설렁탕집의 ‘혜안’…다보스포럼에서 김동연이 주목받은 이유 [오상도의 경기유랑]

2025-01-23

다보스서 모두 “트럼프”…‘예측 불가’ 행보 주시

김동연 “취임식 참석 포기하고 다보스行 잘한 일”

게리 콘 前 국가경제위원장 만나 한미 관계 전망

콘 “한국은 다음 트럼프 경제 조치의 대상 될 것”

샌더스 前 백악관 대변인과 道 경제협력 모색

판교서 ‘양자컴퓨터’ IBM왓슨연구소와 R&D 추진

시스코 1조원대 펀드의 道 스타트업 투자도 모색

이달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막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예측 불가 행보’로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을 불안감에 떨게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4년 만의 징검다리 재집권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연히 다보스포럼 개막일과 겹친 그의 취임식은 행사장 곳곳에서 안보·보호무역을 둘러싼 화두로 존재감을 떨쳤다. 앞서 트럼프는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바 있다.

세계 지도자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대거 뒤집고 미국 우선주의를 지향하는 각종 행정명령을 쏟아낸 트럼프를 우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수입청 신설 등의 행보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다보스포럼 세션인 ‘불확실한 시기의 성장 모색’에 패널로 참석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 기조에 공개적으로 반대론을 펼쳤다. 그는 “보고 싶지 않은 재방송”이라며 “우리는 관세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스위스 유력지 ‘블릭(Blick)’ 역시 다보스포럼 개막 당일 1면 톱으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다뤘다. 22일자 신문에서도 다보스포럼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1∼3면에 배치한 뒤 다시 4∼5면에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기사 하단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취임식 행사에서 나치를 연상시키는 경례를 해 논란을 불러온 사진기사도 실렸다.

◆ 취임식 불참은 ‘신의 한 수’?…트럼프 측근들과 잇따라 회동

이달 13일 경기 수원시의 한 설렁탕집.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포기하고 다보스행을 택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잠시 답변을 망설였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두고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의 혜안(慧眼)은 이곳 다보스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수많은 국내 정치인들이 트럼프 취임식에 몰려갔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들과 접촉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2만명 안팎의 참석 인파 사이에서 화상으로 취임식을 지켜봤을 따름이다. 행사 후 마련된 트럼프 행정부 실세들과의 만남도 대부분 성사되지 못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두고 “예상했지만 헛걸음만 쳤다”는 식으로 개탄했다.

22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의 한 카페에서 세 번째 만난 김 지사는 “결과적으로 (초청을 받고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가지 않은 건 잘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김 지사가 취임식을 거쳐 다보스로 왔다면 다보스포럼 사무국이 요청한 계엄·탄핵사태와 관련한 ‘미디어 브리핑’을 진행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등 유력 통신·방송·신문의 기자, 편집인을 상대로 국내 정치·경제 상황을 설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김 지사는 이를 두고 “(취임식) ‘사진찍기’를 안 하고 실속을 찾았다”고 했다.

이날 김 지사의 눈빛에는 힘이 실렸다. 국내 정치인 중 유일하게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김 지사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경제·금융정책을 조율하거나, ‘입’ 역할을 했던 실세 측근들과 잇따라 만나 한미 관계 전망을 공유한 덕분이다. 과거 트럼프의 측근들은 김 지사에게 한미 관계의 불확실성을 줄일 구체적인 경제 행보 등을 귀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동 이후 한국의 대응 방안 등을 놓고 게리 콘 IBM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일부 소개했다. 김 지사는 문재인정부 경제부총리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콘 부회장을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이날 다보스포럼 행사장 인근 IBM홀에서 콘 부회장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동 이후 한국의 대응 방안 등을 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콘 부회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경제정책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한 뒤 골드만삭스 대표를 거쳐 IBM에서 일하고 있다.

김 지사는 “행정명령들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콘 부회장은 “첫 번째 조치 대상(3개국)에선 제외되지만 다음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콘 부회장이 언급한 행정조치는 무역 적자국 조사, 무역협정 재검토, 전기차 의무화 폐지 등 에너지정책, 파리기후협약·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이다.

이에 김 지사는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경기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콘 부회장은 “한국에 대한 조치가 예상되거나 마련되면 바로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 IBM과 ‘양자컴퓨터’ 공동 연구·개발 추진…경제 행보 이어가

이어 김 지사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사라 허커비 샌더스 미 아칸소 주지사를 만나 협업 강화와 사절단 파견에 합의했다. 샌더스 주지사는 지금도 트럼프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는 실세 중의 실세로 분류된다.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의 대선 출마 전당대회 토론회에 참석해 그의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 샌더스 주지사의 아버지 역시 아칸소 주지사를 역임해 ‘부녀 주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최근 경기도에 주한 아칸소 사무소를 개소하고, 배터리와 모빌리티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김 지사는 샌더스 주지사의 한국에 관한 관심에 감사를 표했다. 두 단체장은 협력을 구체화하고 경제사절단을 교환하는 데 합의했다.

도 관계자는 “1기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 많은 의견을 교환했지만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어 구체적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이날 도내 투자 등을 놓고도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콘 IBM 부회장에게 양자컴퓨터·인공지능(AI) 분야에서 △IBM 왓슨 연구소와 경기도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대학 등의 공동 연구·개발 △인재 양성 △스타트업 협업 등을 제안했고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다. 이콜랩(용수처리), 블룸에너지(연료전지), 시스코(IT)의 최고경영자(CEO)들과는 반도체클러스터 용수·전력 공급, AI 펀드의 도내 스타트업 투자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시스코가 운영하는 펀드의 규모는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23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진행하는 비공개 ‘세계 경제지도자 모임(IGWEL)’ 참석 등을 끝으로 귀국한다. IGWEL에는 전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 50여명만 초대받았으며, 김 지사는 이곳에서 국내 정치경제 상황 등을 설명할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이번 다보스포럼 참가는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계엄·탄핵사태의 해법을 제시하며 경제협력관계를 구축한 게 성과”라고 설명했다.

다보스(스위스)=글·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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