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위기 돌파구, 과학기술에서 찾아야

2025-02-24

산업화에 성공한 이후 대한민국이 직면한 최대 위기를 꼽는다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일 것이다. 아직도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필자는 그 당시 ‘이제는 과학기술입니다’라고 내걸었던 정부 캠페인의 기억이 더 생생하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그 무렵 어려운 와중에서도 과학기술 혁신에 국가의 역량을 결집했다. 그 결과 IMF 구제금융 차관을 조기에 상환했다. 그뿐만 아니라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기기,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산업구조의 대전환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지금 또다시 중대한 위기 앞에 서 있다. 대외적으로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미·중 패권 경쟁 격화와 글로벌 관세 전쟁,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IRA) 혜택 축소 등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가 큰 압박을 받고 있다.

과학기술로 IMF 위기 돌파 경험

기술 경쟁 치열, 격차 벌어질 우려

정부와 국회가 다함께 힘 모아야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 등으로 지정학적 안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아울러 경제는 성장 둔화와 심각한 고령화 문제 등으로 시름이 깊다.

무엇보다 미·중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기술 선점이 곧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은 전략기술 확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구글의 고성능 양자칩 윌로우(Willow)를 장착한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해 이제 양자기술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품은 양자기술은 앞으로 다양한 첨단산업의 양상을 획기적으로 바꿀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견제를 이겨내고 인공지능(AI) 챗봇인 딥시크(Deepseek)를 선보이며 전 세계 AI 산업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는 한정된 기술과 인프라의 최적화를 통해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반면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인해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정치적 혼란 와중에 과학기술 관련 입법과 정책이 후순위로 밀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래산업 육성과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핵심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연구 현장에서는 기존 과학기술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답답한 위기 국면을 타개할 돌파구가 절실하다. 만일 여기서 혁신이 더 지체된다면, 주요 경쟁국과의 기술격차는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벌어질지 모른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 혁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혁신적 과학기술을 통해 산업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 R&D 강화, 인프라 구축, 인재 육성에 대한 투자는 경제 회복을 넘어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지름길이다. 나아가 과학기술은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는 과정에서 협치의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첨단 과학기술 육성과 대규모 R&D 투자를 위한 초당적 협력의 모범을 보여줬다. 30여년 전 한국도 IMF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과학기술 혁신에 집중했고, 그 중심에는 정부와 국회의 긴밀한 협력이 있었다. 과학기술부 격상 및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설치 등으로 거버넌스를 정비했고,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중장기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했다. 그 무렵 정부 R&D 예산 비중이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4%를 넘겼다. 이런 노력은 국가 발전과 도약의 발판이 됐다.

당시를 본보기로 삼아 과학기술 혁신의 시계를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생존과 부흥의 핵심 기반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범국가적 협력을 통해 과학기술 투자와 도전적 연구를 일관성 있게 지원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정책과 제도 혁신도 뒤따라야 한다. 특히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와 임무 중심 R&D 체계로의 전환은 긴 안목을 갖고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다시 한번 함께 힘을 모으면 어떨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준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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