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 선포한” 비상계엄이 선거의 발단이다. 이를 야당과 국민 계몽용이라 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윤석열이 계몽한 것들이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시민들이 써 내려온 나라에서 이토록 어이없는 대통령이 다신 나와선 안 된다는 마음으로, 윤이 남긴 계몽의 지점들을 정리해 봤다. ‘계몽 종합정리’를 통해 선거가 왜 치러지는지 되새기고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아니면 몰랐을 것 1) 대통령 이전, 인간으로서 교양이 매우 중요하단 것을.
계엄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프닝, 계몽령이라고 뻔뻔하게 둘러대는가 하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밥 먹듯 천연덕스럽게 계속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부하나 주변사람들에게 책임 뒤집어씌우기가 다반사다. 헌법의 언어들을 전혀 엉뚱한 맥락 속에 끼워넣어 궤변을 일삼고, 타인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 모든 파국 속에 사과 한마디 없다. 저열하고 상스러운 말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급기야 선거 목전 부끄러움도 없이 ‘부정선거’ 다큐 보러 영화관까지 활보했다. 무엇이든 상상 이상이라 황당할 따름이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기본이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
# 윤석열 아니면 몰랐을 것 2) 민심과 이렇게 동떨어진 대통령도 있을 수 있구나.
역사인식, 대일·대미·대중 관계 등 외교문제, 각종 사회정책,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법정신을 유린한 비상계엄까지. 여론이나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망 등에 눈물도 책임도 보이지 않는 대통령, 격노만 할 뿐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행동을 남발한 대통령이었다. 자유, 공정, 헌법 수호, 합리주의, 지성주의 같은 아름다운 말들을 오염시키고, 본인 뜻과 안 맞는 시민들을 수없이 ‘입틀막’한 불통의 아이콘이었다.
# 윤석열 아니면 몰랐을 것 3) 너무나 당연하지만 대통령에 나서는 이는 대통령을 왜 하려 하는가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전 정권(문재인 정부) 탓, 총선 이후 야당 탓, 음모론과 부정선거 탓이 떠나지 않았다.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국민들의 의구심은 점점 커졌다. 윤석열은 기분 내키는 대로 공정과 상식, 법치 등을 지껄였지만, 그의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 왕 같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윤석열 아니면 몰랐을 것 4) 민주주의를 위해 정당 역할이 정말 중요하단 것을.
윤석열의 영입부터 탈당까지, 끊임없는 계파 간 진흙탕 싸움 속에 국민의힘은 공익은 안중에 없는 사리사욕 집단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당 주류는 계엄 상황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불참했고, 윤석열 탄핵소추와 파면에 반대하며 한남동 관저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추태의 압권은 대선 후보등록 마감일 직전의 ‘후보갈이 사태’ 막장이었다. 외부에서 손쉽게 대선 후보를 데려와 각종 치장을 시켜 기득권을 연명하려는 탐욕·추태가 일거에 드러났다. 소위 ‘빅텐트’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소롭다. 윤의 실체를 알고도 눈감고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다. 국민의힘은 계엄에 대한 똑 부러진 평가와 사과부터 하라.
#윤석열 아니면 몰랐을 것 5)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 계속 발전하는 줄 알았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단 것을.
호시탐탐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려는 움직임에 맞서 시민들이 지켜가야 하고, 너무 상식선인 조항들이라 없었던 규정들, 내란사태 와중에서 드러난 빈틈들을 하나하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군경, 사법부, 언론, 국가인권위, 방통위, 독립기념관 등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기관과 제도들이 허우대만 멀쩡할 뿐 믿을 곳 없다는 사실, 기관 자체보다 구성원들이 중요하다는 것, 피곤한 일이지만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덕분에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무모하고 무도한 대통령 한 사람이 뒤집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자유와 기본권은 단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내면화한 가치이며 양심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의 최후변론엔 윤이 일깨운 역설적 계몽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윤석열의 충격적인 계몽령은 번드르르하게 치장돼 감추어져 있던 우리 사회 곳곳의 부실을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이를 무너뜨려 새롭게 세워 가야 한다고 시민들을 각성시켰고, 윤이 단 몇달 만에 그 기반을 성공적으로 닦아 놓았다.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선거일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