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변경 열심히 하셨나봐요. 며칠새 피부 상처가 눈에 띄게 나아진걸요.”
10일 오후 3시.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17동 병동. 인수인계를 받은 직후 김 모씨(60대 후반)의 욕창 드레싱을 마친 이윤형 간호사가 “상처가 깊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반색했다. 이씨가 근무하는 17동 병동은 여러 질환을 동시에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들이 많다. 이런 환자들은 오랫동안 한가지 자세를 유지하면 뼈가 튀어나온 부위에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면서 혈액순환 장애가 일어나 피부 조직이 손상되기 쉽다. 욕창 발생에 취약한 고위험군인 셈이다. 흔히 욕창은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만 생긴다고 여긴다. 하지만 장기간 침상생활로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 똑같은 자세로 몇 시간만 있어도 욕창이 생길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도 중증도가 높은 삼성서울병원에는 요양병원 등을 전전하느라 욕창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채 전원 오는 환자들도 많다. 욕창이 2차 감염 등 합병증으로 번지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여러 환자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간호사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이씨는 “꼬리뼈 부위에 동전 만한 크기의 2단계 욕창을 갖고 입원해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환자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고 어느 정도 거동도 가능했다”며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해 상처가 악화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드레싱을 교체하면서 ‘스키넥스’로 욕창 부위를 관찰하던 중 기존 2단계에서 3단계로 진행된 것을 확인했고 주치의와 상의해 발빠른 조치를 취한 결과 단기간 내 욕창이 치유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욕창은 진행 정도에 따라 피부 손상 없이 색상 변화만 나타난 1단계, 피부 일부가 손상된 2단계, 피부 전층이 손상되고 피하지방층이 노출된 3단계, 피부 전층이 손상돼 뼈나 힘줄, 근육 등이 노출된 4단계 등으로 구분된다. 문제는 욕창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노인 환자들은 피부 착색이나 굳은 살 때문에 초기 평가가 쉽지 않다보니 저연차 간호사들은 더욱 애를 먹었다. 스키넥스는 이 같은 현장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강미라 디지털혁신센터 부센터장(건강의학센터 교수)과 간호본부가 파인헬스케어와 함께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욕창 단계 예측 솔루션이다. 카메라로 욕창 부위를 촬영하면 전자의무기록시스템(EMR)에 사진이 업로드되고 AI 모델이 현재 욕창 단계를 자동 분류해준다.
간호사들이 평소 사용하던 BPOC(Barcode Point of Care) 단말기를 통해 수집된 욕창 이미지 약 1만 건을 사용하고 10년 이상 경력의 간호사 3명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덕분에 욕창 단계 평가 오류를 줄이고 정확도가 높아졌다. 피부상태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개별 환자에 맞는 드레싱 제재와 의약품 추천도 가능하다. 17동 병동의 경우 욕창 조기 발견율이 95%에 달한다.
강 교수는 “스키넥스를 통해 욕창 관리 경험이 적은 간호사들도 보다 신뢰도 높은 욕창 평가와 적절한 드레싱 재료를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준 결과 욕창 치유 효과가 30~40%가량 향상됐다”며 “별도의 고가 장비 없이 스마트폰 정도의 작은 기기에 앱을 설치해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편의성이 높으면서도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치유 효과를 높일수 있다”고 말했다.
스키넥스는 세계 최고 권위 의료 IT협회인 미국 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협회(HIMSS)가 주관한 2022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포스터로 발표되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높은 관심을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은 13개 병동에 스키넥스를 시범 적용하며 추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욕창 간호에 필요한 기능을 포함해 솔루션을 고도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부터 입사 3년 미만의 저연차 간호사와 AI를 비교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국내 의료기관 7곳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을 통해 유효성 검증이 완료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고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다. 삼성서울병원은 2013년 선제적으로 간호부서 내 전담조직을 꾸리고 업무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숙현 간호업무개발팀장은 “학회 발표를 통해 스키넥스를 접하고 언제쯤 사용이 가능할지 문의하는 병원들이 많다”며 “간호사들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