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민 대상으로 한·미 자본시장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응답자의 약 55%가 미국의 자본시장을 선호한다는 답변이었다. 미국 자본시장을 선호하는 이유로서 기업 혁신성 및 수익성이 27% 이상으로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주주환원이 높다는 의견도 20%를 넘었다. 국내 증시 침체(17.5%), 미국경제 호황(15.4%), 투명한 지배구조(14.8%)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국내 증시 대신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 관심이 높아지고, 국내 주가지수 상승이 현저히 제한되며, 국내 자본시장 발전방안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우선,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에 방점을 둔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 추진, 그리고, 관련 벤치마킹 지수인 코리아 밸류업 주가지수도 출범했다. 현재까지 밸류업 프로그램의 가시적 성과가 미약하고, 밸류업 주가지수 편입 종목 선정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지만, 대표적인 국내 자본시장 발전방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으로 공매도 재개이다. 그동안 무차입 공매도 적발, 개인투자자에 대한 불공평한 공매도 제도 개선 등을 이유로 공매도 시행이 금지된 바 있다. 하지만, 불법 공매도 적발을 위한 시스템 개발,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날(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전제로 올해 3월부터 공매도의 전격 시행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대체거래소(ATS: alternative trading system) 출범도 예정되어 있다. 대체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독점하는 거래소 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키고, 거래시간 및 체결방법의 다양화를 통해 국내 투자자 유인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자본시장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기업 이사의 주주 이익을 위한 충실 의무 법제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주주환원에 소홀했던 국내 기업 이사회의 의사결정 행태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국내 자본시장으로의 투자자 유인을 견인하는 근본 방안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높인다.
위와 같은 일련의 자본시장 발전방안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국내 증시의 부진과 투자자 이탈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코스피 지수와 S&P 지수의 수익률 격차가 30%포인트 이상 벌어질 정도로 국내 증시의 부진에도 미국 증시의 상승세는 두드러졌다. 더욱이, 최근까지 개인투자자의 미국 증시로의 투자처 변경 및 외국인 순매도세가 줄곧 이어지는 등 투자자의 국내 증시 이탈은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밸류업 지수 출시, 공매도 재개, 대체거래소 출범, 상법 개정안 국회 통과가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해당 방안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결국, 해당 방안 시행에 있어 우려되는 문제점을 얼마나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는지가 정책 성공의 관건이다.
우선, 밸류업 지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밸류업 지수 편입 종목 선정 기준이다. 일례로 업종별 상대가치를 평가하는 주가순자산배율(PBR)을 절대기준으로 고려하여, 전체 순위 비율 상위 50%를 선정한 방법의 오류, 특례기업 선정의 애매한 요건 등이 문제점이다. 더욱이, 세제혜택 지원없이 기업의 자발적 주주환원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 캠페인 수준에 머무를 우려가 있다. 이러한 개선 없는 밸류업 프로그램 운영은 기업가치 제고를 통한 자본시장 활성화란 정책 달성을 어렵게 할 것이다.
다음으로 공매도 재개는 많은 개인투자자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기제임이 분명하다. 주주환원에 소홀한 기업경영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차입 공매도 적발 시스템 도입을 이유로 공매도의 전격 재개를 서두르는 것은 심히 우려된다. 자칫 공매도 재개가 소규모 자본을 통한 단기투자에 집중하는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수익 창출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심화시켜 개인투자자의 장기투자 의지를 꺾을 수 있다. 공매도 재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 안착,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이루어진 시점 이후에 추진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사료된다.
다음으로 대체거래소의 출범은 거래비용 절감 및 다양한 거래방식 도입으로 투자자의 국내 증시 이탈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선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일단, 대체거래소의 주식시장 점유율을 15%로 제한하는 규정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점유율 제한이 거래소 간 경쟁 촉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체거래소의 취급상품도 거래소 상장주식에 국한한 것은 향후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대체거래소의 시장감시 역할을 한국거래소가 담당한다는 점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거래소가 대체거래소의 감시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감시업무는 금융당국이 담당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결론적으로 국내 증시 부진에서 비롯된 일련의 자본시장 발전방안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행을 서두르기보다는 예상되는 문제점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에 우선하는 노력이 더욱더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