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의 공약은 각별하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라는 ‘헌정 위기’ 속에서 국민의 권력에 대한 ‘대오각성’과 ‘개혁’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추락한 국가 위신, 미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관세전쟁, 글로벌 질서의 격동과 다극화, 북핵 고도화와 북·러 군사동맹의 가시화 등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정세를 헤쳐나갈 복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느 정부에서든 외교안보 전략은 크게 5개 아이템 속에서 구성돼왔다. 북핵 문제 해결, 남북관계 정상화, 한·미 동맹 강화, 경제안보 및 국제협력, 강군 육성이다. 강조점과 우선순위, 접근방법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 아이템들의 나열과 변주였다.
그런데 이런 틀의 접근이 갖는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교·통일·국방 정부 부처의 업무 틀에서만 발상하는 ‘영역주의’,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공약의 나열이란 점에서 ‘소재주의’에 머물러왔다. 여기서 공약을 묶는 ‘한반도형’ 외교안보 패러다임이나 대전략을 읽기는 어려웠다.
둘째, 목표와 과정의 전도다. 전략 수립의 기본은 ‘전략적 안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다. 이를 토대로 단기적·중장기적, 구조적·상황적인 취약성에 대한 식별, 안정성과 균형을 찾기 위한 전략적 방향, 수단, 과정이 구상돼야 한다. 5개 아이템은 사실 전략적 안정성 확보를 위한 수단과 과정에 가깝다. 이번 공약들도 수단을 목표화한 경우가 많다.
셋째, 태세와 해법의 혼동이다. 북핵 억제를 위한 확장억제 강화, 전력 증강, 핵 잠재력 강화 등은 북핵 대응 ‘태세’의 차원이다. 문제 해결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 태세는 갖추되 문제를 풀기 위한 섬세한 외교안보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 대부분의 공약에서 태세는 있으나 해법이 빈약하다.
넷째로, 변화된 현실의 반영이다. 우리의 외교안보 전략은 여전히 탈냉전의 그늘, 관성적 대북정책, 형식주의와 소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외교안보 정세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핵무기 고도화와 북·러 동맹화, 지역 강대국의 부상과 다극화, 미국 패권의 약화, 핵 군비 경쟁 심화 등 복합적 스케일로 진화했다. ‘북핵 지상주의’, 강압 만능론, 복고적 남북협력론 등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어떤 발상의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 다양한 공약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전략적 안정성’의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의 전략적 안정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외교안보·경제가 어떻게 상호 조율될 때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안정성 지표를 설정해야 한다.
가령 충돌의 안정성, 위기의 안정성, 군비 경쟁의 안정성, 공존의 안정성 등에 대해 구조적·상황적 취약성을 파악하고 ‘지속 가능한 전략적 안정성’ 확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 해결적 외교안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가령 ‘한반도형 협력안보’와 같은 구상이다. 협력안보는 적대하는 상대와 다양한 협력을 통해 안보를 증진하는 접근이다. 핵심은 ‘상호안전보장’이다. 상호안전보장의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며, 협력적으로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 장기적인 단계적 군비통제와 비군사분야에서의 협력 아이템을 상호촉진적으로 연계하는 구상이다.
핵심은 상호안전을 보장해가며 가능한 것부터 위협을 감소시키는 종합적인 ‘협력적 전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잘 구축된 프레임은 실재(reality)를 정의하는 것 이상으로 실재를 창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