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외야수 로버트 레프스나이더(24·보스턴 레드삭스)가 메이저리그(MLB)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레프스나이더는 지난 22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1호 홈런을 터트렸다. 펜웨이파크 좌중간 담장은 높이가 11m에 달해 '그린 몬스터'라 불린다. 레프스나이더는 악명 높은 그린 몬스터를 훌쩍 넘기는 솔로 아치를 그려 팀의 4-2 승리에 힘을 보탰다.
레프스나이더는 올 시즌 보스턴에서 백업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상대 선발 투수가 오른손일 때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지만, 풀타임 주전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점점 눈에 띄는 활약을 하면서 팀 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23일까지 올 시즌 9경기에서 타율 0.333에 OPS(출루율+장타율) 0.902를 기록하고 있다. 백업 선수로는 충분히 훌륭한 성적이다.
레프스나이더의 활약은 한국 야구에도 희소식이다. 레프스나이더에게는 김정태라는 한국 이름이 있다. 그는 1991년 3월 26일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5개월 만에 입양돼 한국을 떠났다. 미국에서 독일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품에 안겨 큰 사랑을 받으며 빅리거로 성장했다. 그런데도 레프스나이더는 처음 빅리그 무대를 밟던 2015년 미국 언론에 자신을 "한국에서 온 선수"라고 소개했다.

2012년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된 레프스나이더는 3년 만에 초고속으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데뷔 2경기 만에 안타와 홈런을 기록하며 주목 받았고, 양키스의 차세대 주전 2루수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양키스의 '괴물 타자' 에런 저지와 남다른 친분도 쌓았다. 저지 역시 태어나자마자 교사 부부에게 입양됐고, 10세 때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연이 있다.
다만 레프스나이더는 이후 MLB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다 2017시즌 중반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됐다. 이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탬파베이 레이스를 거쳤고, 2020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해 주로 추신수의 교체 선수로 활약했다. 2021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51경기를 뛰다 2022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저니맨' 생활에 지친 레프스나이더는 지난 시즌 한때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다.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시즌에도 그라운드에 서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구단 프런트로 일하면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수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가 데뷔 후 최고 시즌(93경기 타율 0.283, 홈런 11개, OPS 0.830)을 보내고 있었기에 더 뜻밖의 고백이었다. 그러나 보스턴이 올해 210만 달러의 구단 옵션을 실행하면서 레프스나이더도 현역 생활을 연장하게 됐고, 쏠쏠한 활약으로 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와 함께 레프스나이너가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유니폼을 입고 뛸 가능성도 생겼다. WBC는 본인뿐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 중 한 명의 혈통에 따라 출전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LA 다저스 간판타자 프레디 프리먼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지난 WBC에서 어머니의 국적인 캐나다 국기를 달고 출전하기도 했다.


올 시즌 내셔널리그 홈런 1위(8개)에 올라 있는 다저스의 토미 현수 에드먼도 2023년 대회 당시 외국 국적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 야구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는 한국 출신 이민자인 어머니 곽경아 씨와 미국인 아버지 존 에드먼 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다.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주전 2루수였는데, 올해는 '스타군단' 다저스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WBC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역 빅리거들이 출전하는 국가대항전이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부진한 성적을 낸 한국은 이번 WBC에 사활을 걸었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김하성(탬파베이) 김혜성(다저스 마이너리그) 등 미국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도 부상이나 소속팀의 반대 등 특별한 걸림돌이 없으면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에드먼과 레프스나이더가 빅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한 뒤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면,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류지현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해 이미 레프스나이더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