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컬렉션이 만든 전시들…한국 미술의 하이라이트

2025-05-04

‘산울림 19-Ⅱ-73#307’(1973)이 1층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존재감을 뽐냈다. 김환기가 세상을 뜨기 한 해 전에 그린 대형 청색 점화다. 그 왼쪽에는 최욱경의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 오른쪽에는 이성자의 ‘천년의 고가’(1961)가 걸렸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를 중심에 두고 1960~70년대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동시대 현대미술의 흐름과 함께 했던 여성 추상 미술가들의 대표작을 선보였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가 1일 개막했다. 서울관이 2013년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에 개관한 이래 처음 열린 상설전이다. 미술관 소장품 1만1800여점 중 196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의 에센스를 86점으로 꾸렸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건희컬렉션이 지역 10개 미술관을 순회한 뒤 국립현대미술관에 안착해 첫 상설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산울림’과 ‘천년의 고가’를 비롯한 9점이 이건희컬렉션이다.

한국근현대미술의 에센스, 상시 전시

전시는 돌과 TV를 탑 쌓듯 설치해 모니터에서 비치는 돌과 실제 돌을 중첩한 박현기의 실험 미술 ‘무제’(1979)를 거쳐 신학철의 민중미술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9)로 이어진다. 지하 전시장에선 백남준의 ‘잡동사니 벽’(1995)과 강익중의 ‘삼라만상’(1984~2014)이 마주 본다. 두 작품 사이에는 여러 인종과 성별의 사람 모형이 떠받치고 있는 서도호의 ‘바닥’(1997~2000), 김수자의 영상 ‘보따리 트럭-이민자들’(2007)이 전시됐다. 1990년대 이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한국 미술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으로 접했을 명작들을 언제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김인혜 학예실장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오면 늘 한국 근현대미술을 볼 수 있도록 상설전을 꾸렸다”며 “서울에서 하이라이트를 보고 과천에 펼쳐놓은 한국미술 100년사로 ‘심화학습’ 하시길 권한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서울과 과천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두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서울에서 하이라이트, 과천에서 ‘심화학습’

과천에서는 ‘한국근현대미술Ⅰ’을 열었다. 5년 만의 소장품 상설전으로 1900년대부터 한국미술 100년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쳤다. 채용신ㆍ구본웅ㆍ임군홍ㆍ오지호ㆍ박래현ㆍ김기창ㆍ이중섭 등 70명의 145점이 나왔다. 이 중 이건희컬렉션이 42점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정 학예사는 “소장품 중 중요작을 고르다 보니 이건희컬렉션이 많았다. 이건희컬렉션의 풍부한 근대미술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천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마지막 도화서 화원 조석진ㆍ안중식의 병풍부터 채용신ㆍ김규진까지 근대 산수 인물화부터 시작했다. 서양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들어오던 시기에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격변의 시대를 담아내야 했던 이들의 고민이 작품에 녹아 있다.

이중섭 ‘황소’, 김환기 ‘산울림’은 9월까지만

오지호ㆍ이중섭은 따로 ‘작가의 방’을 마련해 집중 조명했다. 이건희컬렉션으로 기증된 이중섭의 ‘황소’와 ‘흰 소’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부 화가 김기창ㆍ박래현의 방도 마련했다. 닮은 듯 다른 부부의 세계가 나란히 펼쳐졌다. 구본웅이 시인 이상을 그린 ‘친구의 초상’(1935)부터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1960) 같은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도 자리했지만, 도상봉의 아내 나상윤의 ‘가면 있는 정물’(1926)과 ‘누드’(1927) 등 근대 여성 화가의 신선한 작품도 재발견할 수 있다. 김인혜 실장은 “온 국민이 보고 싶어하는 작품과 온 국민이 봤으면 하는 작품을 함께 걸었다”고 설명했다. 서울관의 ‘산울림’(김환기), 과천관의 ‘황소’(이중섭) 등 일부 작품은 9월까지만 볼 수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박물관에서 시작되는 이건희컬렉션 해외 순회전에 출품되면서 다른 작품으로 교체된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도 이건희컬렉션 전시

두 전시를 보고 이건희컬렉션 속 화가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면 서울 노원구의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림이라는 별세계: 이건희컬렉션과 함께’도 찾아볼 만하다. 강요배ㆍ곽인식ㆍ권옥연ㆍ김봉태ㆍ방혜자ㆍ유영국ㆍ이인성ㆍ하인두 등 이건희컬렉션으로 국공립 미술관에 다수의 작품이 기증된 화가 8인을 조명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의 기증을 받은 기관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ㆍ대구미술관 등에서 기증받았던 작품을 빌려왔고, 여기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함께 전시했다. 특히 리움미술관 소장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경주의 산곡에서''아리랑 고개' 세 점이 함께 걸렸다. 모두 이인성이 22세 되던 1934년에 그린 대표작이다. 7월 20일까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