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후회와 고통…자식 지키지 못한 벌”

2025-05-05

너무나 허망하게 떠났다. 자식이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이다. 단순히 시간만 흘러간 게 아니다. 부모에게는 하루하루가 후회와 고통의 나날이었다.

교육 컨설턴트인 양민(사진) 박사는 지난해 5월 2일 경찰 총격에 큰아들 양용(당시 40세)씨를 황망하게 보냈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부모로서 가슴이 먹먹하다. 아직도 그의 쓰라린 심정은 ‘2024년 5월 2일’에 멈춰 있다. 양 박사는 “내가 느끼는 이 모든 슬픔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벌”이라고 자책했다.

만약 그때 정신건강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경찰을 돌려보냈더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지만 죽은 아들을 살릴 수는 없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도 외롭고 고단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지난 2일 양 박사를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아들이 숨진 곳이다. 아들의 총을 맞고 쓰러졌던 소파도, 손길이 닿았던 가구도 모두 그대로다.

부모는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라도 안 싸우면 억울한 죽음 잊혀져”

한인사회의 침묵…너무나 섭섭

무관심 때문에 1주기 행사 안해

보상 바라며 싸우는 게 아냐

LAPD 반성·재발방지 나서길

양민 박사는 아들을 할리우드힐스 포리스트론에 안치했다.

생전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포리스트론 묘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하이킹을 즐겼다.

양 박사는 “용이가 하이킹을 즐기던 곳이라서 그곳의 풍경이 익숙할 것”이라며 “무덤 옆에 개울이 흐르는데 용이가 그 물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잘 자면 좋겠다”고 했다.

- 1년이 지났다.

“아직 죽음에 대한 진상을 못 밝혔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난 1년 동안 매일매일 아들이 죽은 ‘그날’을 살았다. 그동안 LA경찰국은 문제점에 대한 개선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정의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내게 분노와 절망감을 안겨줬다. 그럴수록 아들을 잃은 슬픔은 더욱 깊어졌다.”

- 어떠한 문제점인가.

“용이가 죽기전에는 몰랐다. 무고한 시민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이 이 사회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당국의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단,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다. 검찰은 LAPD의 사건 보고서와 징계 여부 등을 참고해서 기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LAPD와 경찰위원회가 제 식구를 감싸는 구조에서 검찰이 사건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가. 실제로 지난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발생한 경관 총격 사건(OIS) 가운데 단 한 건도 경관이 기소된 적은 없다.”

- 사건 기록물을 아직도 보나.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쓰라린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또 진실과 정의를 위해 억지로 참고 사건 당시 총을 쏜 경관의 보디캠 영상, 관련 문서들을 아직도 매일 보고 있다.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일부러 아들의 모습보다는 사건 시각, 경과, 연루된 인물의 행동을 집중해서 본다.”

- 지역 사회의 반응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슬퍼해 주고 목소리를 내줘 감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인 사회의 침묵이 너무나 섭섭하게 느껴진다. 이런 무관심 때문에 1주기 행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 혼자 떠들면 패배감만 더 느낄 것 같았다. 정부 기관도 마찬가지다. 용이는 한국 국적자인데 총영사관에서도 보여주기식 대응만 있었고 실질적인 도움은 하나 없었다.”

- 왜 무관심한 것 같나.

“초기 한인 사회는 삶의 터전이 한인타운에 집중돼 있어서 결속이 강했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이 다양해지고 거주 지역도 흩어지면서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다. 또한, 이민 1세대, 한국 국적자, 미국 태생 한인 등 서로 다른 정체성이 섞여 있다 보니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들은 ‘제도에 맞서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 듯하다.”

- 외로운 싸움에 대한 주변 반응은.

“많은 변호사가 경찰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싸움은 힘들다고 했다. 오히려 보상을 최대한 받아내는 게 현실적인 목표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며 싸운 게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하고 비참하다.”

- 비판 여론도 있는데.

“아들 관련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총 맞을 짓 했네’, ‘경찰이 잘 죽였다’ 등의 댓글을 보면 웃어넘기려고 해도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상한다. 사건의 본질과 제도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아들을 비난하는 건 너무나 경솔한 일이다. 누구나 제2의 ‘양용’이 될 수 있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생각을 같이 모아주지 않으면 이런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LA카운티정신건강국의 한인 직원인 윤수태 씨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내게 아들에 관해 어떤 정보도 묻지 않았다. 아들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 현관 앞 내 뒤에 숨어 권위적인 태도로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정신건강국 직원이라고만 밝혔다. 매우 비전문적이었다.”

- 당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원래 후회하는 성격이 아닌데 모든 게 후회된다. 사건 전날 아들 집에 간 일, 아들이 지갑을 찾으러 내 집에 왔을 때 집에 있다가 가라고 한 일, 정신건강국 직원을 부른 것까지 전부 다 후회된다. 심지어 ‘LA에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면’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또 사건과 별개로 과거 타인의 아픔에 내가 얼마나 공감했는지도 돌아보게 됐다. 신문에서 볼법한 일을 내가 직접 겪어 보니 그동안 타인의 슬픔이나 힘든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들 죽은 집에서 계속 사는데.

“슬프다는 이유로 아들이 죽은 현장을 뒤로하고 떠나는 건 용이한테 못 할 짓이다. 자식이 죽어 힘들다고 떠나는 게 부모가 할 도리인가. 지금 사는 집 거실에 아들이 죽었다는 현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슬픈 감정이 많이 북받쳐 오르지만, 슬픈 감정을 많이 억누른 채 살고 있다. 아직도 사건이 발생한 집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퍼하며 사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 아들이 주로 언제 생각나나.

“매일 생각난다. 아들과 함께 자주 갔던 그리피스 파크 하이킹 코스, 인앤아웃, 한식당 모두 지금은 일부러 피하고 있다. 또 용이가 생전에 LA 하이스쿨 인근에 살았는데 지금은 웨스턴이나 피코 인근을 일부러 안 가려고 한다. 아들과의 추억이 너무 선명해서 마음이 무너질까 봐 그렇다.”

- 아들 유품은 다 정리했나.

“못 볼 것 같아서 거의 다 버렸다. 일부는 쌍둥이 형이 가져갔는데 성경 구절 카드나 일부 옷가지가 전부다. 쌍둥이 형이 동생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부러 용이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한다.”

- 아들 지인들과는 연락하나.

“용이에게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에게 세상은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두려워했는데 죽기 얼마 전부터 친구를 많이 사귀려고 노력했다. 한인 테니스 동호회도 가입했었다. 지금은 용이 여자친구만 가끔 만나고 있는데 여전히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만나면 일부러 다른 대화를 한다.”

- 언제까지 싸울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는 기한이라는 게 없다. 계속하는 거다. LAPD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의 경우 최소 2~3년은 걸리는데 다른 방식의 행동이 필요하다면 계속 이어갈 것이다.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일모레면 일흔인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부모라도 안 싸우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은 잊혀질 수 밖에 없다. 용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언제가 승리인가.

“승리는 없다. 용이를 살려낼 수 없지 않은가. 우리 가족이 바라는 건 최소한 LAPD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당국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찰은 용이 사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 한인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중의 목소리를 규합하고, 한인 사회를 결속 및 대변할 수 있는 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한인 단체들은 충분한 힘이 없는 것 같다. 또 한인 사회에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가족이나 사람이 많다. 그들을 돌보기 위한 열린 공간과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 어떤 아들로 기억하고 싶나.

“가엾지만 대견한 아들이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과 실행력이 있었다. 죽기 전날에도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이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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