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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 때가 그리울 정도입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화문화아카데미의 『2025 새헌법안 - 대권에서 분권으로』 출판 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정당도 없고 의회도 없고, 정당 정치는 브레이크 다운(실패) 했다고 느낀다. 대통령 중심 정치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 같아 두렵다”면서다. 최 교수는 ‘3김 정치’ 시기를 “민주화, 세계화, 호남의 정치 안정이 이뤄졌다”고 평가하면서 “이후 퇴행을 거듭해 오늘의 87년 체제는 파국적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87년 체제는 사회·경제적으로 변형됐다”며 “수도권 집중이 심해졌고, 수도권 교육 받은 중산층에 맞춰져 정치가 돌아가고 있다. 정당 정치, 의회는 어디로 가버리고 이념 갈등만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권력은 나뉘어야 하고, 대통령 비서실 규모는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며 “양당제가 아닌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25 새헌법안』은 박은정 이화여대(법학)·박명림 연세대(정치학)·박찬욱 서울대(정치학)·장영수 고려대(법학)·조진만 덕성여대(정치학) 교수와 하승수 변호사가 함께 만들었다. 정치권의 헌법 개정 논의에 ‘땔감’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새헌법안’의 핵심은 현재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틀을 유지하되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대폭 덜어내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된 인사권을 줄였다. 예컨대 현행 헌법 상 대통령이 지명·임명하는 감사원장을 추천위원회의 추천에 이어 국회 3분의 2 이상 동의를 거쳐 선출하도록 정했다. 또 국회를 양원제(공화원·민주원)로 바꾸는 방안도 담겼다. 기본권 강화를 위해 일부 기본권 적용 대상을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이 전부인 차별금지기준에 ‘신체적 조건, 정신적 장애, 성적 지향, 사회적 신분’ 등을 추가했다. 기후생태위기 대처에 대한 국가의 책임도 명시했다.
출판기념회에는 진보·보수의 치우침 없이 정대철 헌정회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강금실 경기도 기후대사(전 법무부 장관) 등 60여명의 명사가 참석했다. 윤 전 장관은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헌신했던 분들도 막상 대통령으로 권력을 쥐면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며 “제도와 사람 중에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해왔지만, 과거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개헌 논의에 참여하면서 제도의 문제라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헌법을 고쳐서 다시는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국가적인 불행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중 하나인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이 자리에서 “어제(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저녁을 하면서 적어도 이 문제(개헌)에 관해서는 당신도 확실한 입장을 밝히는 게 맞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도 (개헌을) 못하면 우리 공동체 전체가 정말 불행할 것”이라며 “반드시 이번에는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