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기 돌파, 파괴적 결단이 절실하다

2024-11-13

‘삼성전자 위기론’이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혹자는 원인이 삼성 내부에 있다며 비판하고, 혹자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고용과 수출, 국내총생산(GDP) 등 거의 모든 경제 지표에서 삼성전자의 흥망은 곧 대한민국의 흥망과 직결돼 있다.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 하나를 꼽으라면 반도체 산업이고, 가장 중요한 기업 하나를 꼽으라면 삼성전자다.

반도체와 삼성전자가 이처럼 중요하기에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재도약시킬지 지혜를 짜내서 해법을 모색할 때다. 물론 삼성전자 내부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일 것이다. 무너진 조직문화를 재건하고, 인공지능(AI) 시대에 급격히 흔들린 기술 경쟁력을 이제라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회복해야 한다. 지난달 전영현 부회장이 발표한 사과문을 보니 삼성 내부에서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다.

국가흥망 직결되는 반도체 산업

주 52시간 대못 규제 손질하고

취업·이직 쉽게 고용자유화해야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에게 가장 큰 애로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적한다. 기술력은 우수 인재들의 집중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주 52시간 제도에서는 연구 인력 운용이 어렵고, 개발 속도도 형편없이 느리다.

반도체 기술은 고도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반복적인 실험·조정이 필수적이고, 노동집약적 과정이다. 필자가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될 때까지 집요하게’ 해야만 성공한다는 것이 반도체 산업에서는 만고의 진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천편일률적으로 52시간 근로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번 삼성의 위기 극복뿐 아니라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은 결국 기술력이다. 이 때문에 미국·일본에서는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에 한해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제도를 이미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우리도 주 52시간 근로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근로시간뿐만 아니라 고용 유연화도 필수다. 고용 유연화 이야기만 나오면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반대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 단순히 기업이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 주자는 것이 아니다. 경쟁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한 인적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확보할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고용·해고가 자유롭다는 것은 취업·이직이 그만큼 쉬워진다는 의미다. 기업에만 유리하고 근로자에겐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가 아니다. 최근 삼성의 위기에 대해 경직된 조직문화 탓에 직원들이 보신주의에 빠져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는 소위 ‘삼무원(삼성 공무원)’이 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돕는 것이다. 말로는 국내에 투자하라고 촉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할 때는 열심이다. 하지만, 막상 투자가 결정되고 조성하는 과정에서 인허가 과정 등을 보면 도대체 이 나라가 반도체 강국인지 의구심이 든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행정 절차와 단계마다 불거지는 특혜 시비 등 갈등 조정은 모두 기업의 몫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핵심인 전력과 용수 문제를 해결 못 해서 착공이 몇 년씩 지연되는 사례도 다반사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풀어주지 않으면 손을 쓸 방법이 없다. 행정적 절차 하나조차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국내에 투자를 많이 하라고 압박하고,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이기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트럼프 1기에 이어 트럼프 2기도 보호무역주의 파고가 더 커질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부터 이미 “삼성과 SK하이닉스 같은 해외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줄 것이 아니라 관세를 부과해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조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기에 대폭 수정될 공산이 크다. 지금 우리 반도체 산업은 거대한 파고와 암초를 동시에 눈앞에 두고 있다. 파괴적 결단만이 살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양향자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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