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대출 보증제도가 이재명 정부 출범에 맞춰 시험대에 올랐다. 이미 보증기관들은 보증비율을 축소하고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하면서 전세대출 리스크를 줄이는 데 착수했다. 집값을 떠받치는 전세대출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금융안정 차원의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SGI서울보증은 오는 11일부터 유주택자 전세대출에 대해 사실상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를 적용하고 보증비율도 종전 100%에서 90%로 줄인다. 13일부터는 HUG도 보증비율을 90%로 축소하고 소득심사를 전면 도입한다. 보증기관이 일방적으로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에서 벗어나 금융권 전반에 책임 분담을 유도하는 방향이다.
두 기관 모두 보증서 발급일을 기준으로 새 기준을 적용하며, 단순 계약일이나 이전 대출 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 기존 전세대출을 연장하거나 이사 목적의 대환일 경우에도 모두 신규 취급으로 간주된다. 실질적으로 전 금융권의 전세대출에 대한 심사 기준이 한층 강화된 셈이다.
전세계약은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보증금을 지급하고 2년간 임대인의 주택을 점유하는 계약이다. 임대인은 큰 규모의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고, 임차인은 주거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은 통상 보증기관의 전액 보증(100%)을 전제로 은행이 위험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DSR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은 DSR 규제 강화로 억제된 반면 전세대출은 상대적으로 쉽게 자금 조달이 가능했다. 특히 무소득자·저소득층·고령자 등 상환능력 평가가 어려운 차주에게까지도 보증 기반으로 대출이 확대됐다.
전세대출, '사각지대 대출' 오명···보증기관만 리스크 떠안아
전세대출은 본래 임차인의 거주 비용 마련 목적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갭투자 등 매매 수요를 떠받치는 간접 자금 통로로도 활용돼 왔다.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규모는 통상 주택가격의 절반을 넘기 때문에 전세계약이 있는 주택은 상대적으로 낮은 자기자본으로 매매될 수 있다. 전세대출로 인해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이 함께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져 왔다는 얘기다.
임차인이 전세대출로 과도한 보증금을 부담하면서 보증기관과 임차인이 피해를 떠안는 구조도 고착화됐다. 보증기관은 대위변제를 반복하며 부실이 누적됐고, 지난해 HUG의 전세반환보증 대위변제액은 약 4조원에 육박했다. 대위변제 금액은 경매를 통해 회수할 수 있지만 전액을 돌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세가격이 하락할 경우 보증기관이 부담하는 손실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보증비율이 100%일 경우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 유인이 떨어지고,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부담은 전액 보증기관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시장 안팎에선 전세대출 제도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무분별한 대출은 줄이되 실수요자는 보호하는 선별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새 정부도 전세대출에 DSR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GI가 사실상 DSR 40% 기준을 시범 적용하기로 했지만 제도상 전세대출은 DSR 계산에서 제외된다.
현재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이지만 전세가 하락과 역전세, 보증사고 증가가 맞물리면 전세대출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보증기관과 금융회사의 리스크 분담 체계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대출 DSR 반영 논의···이자 중심 접근 제언도
전문가들은 전세대출 이자를 임차인의 DSR에 직접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채무불이행은 임차인이 이자를 내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DSR 적용을 통해 과잉 채무를 예방하고 이자 납입 연체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계약의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전세대출을 고려한 임차인과 임대인의 DSR 규제 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임대인의 경우에는 원금을 반영하기보다는 DSR 규제수준을 현 수준보다 낮춰 대출 여력을 유지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세시장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정보가 불충분한 만큼 전세시장의 부작용 완화 및 위험관리 방안 마련을 위한 지속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규제 편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고, 전세시장 관련 금융안정은 전세대출 이자보다는 임대인의 전세보증금 상환 여부가 핵심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