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수(Exit)는 벤처생태계 종착지가 아니다. 오히려 출발점이다. 창업자에게는 다음 창업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고, 투자자에게는 재투자 원천이 되며, 생태계 전체에는 성숙한 자본 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회수시장은 고장났다. 회수는커녕 유입도 끊기고 있고, 유망기업은 해외로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유니콘이 안 나오는 이유는 창업 환경이 아니라 회수 환경 때문이다”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 회수 비율은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다. 미국은 벤처투자 받은 기업의 95%가 M&A 혹은 IPO를 통해 Exit에 성공한다. 반면에 한국은 58%에 그친다. 그나마 대부분은 상장을 통해 회수를 시도하지만, 코스닥 상장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고 복잡하다. 정작 상장 이후에는 관리 종목 지정과 퇴출 기준이 모호해 '좀비기업'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진입은 어렵고, 퇴출은 허술한 시장에서 '건강한 회수'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상장과 퇴출을 통합적으로 개편해야 할 때다. 핵심은 간단하다. 상장요건은 유연하게, 퇴출요건은 엄격하게, 진입장벽은 낮추되, 자본시장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퇴출은 체계적으로 정비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벤처와 자본시장 모두를 살리는 회수시장 정상화 전략이다.
첫째, 상장요건의 과감한 완화가 필요하다. 현행 코스닥 상장제도는 기술특례, 성장성 특례 등 몇 가지 예외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매출과 영업이익 기준, 감리 절차, 회계기준 충족 조건 등으로 스타트업에게는 높은 장벽이다. 특히 인공지능(AI), 헬스케어, 소부장 분야처럼 초기 수익모델이 불완전한 기업에게는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상장 요건을 대기업 중심의 회계 프레임에서 벗어나 기술력, 시장성, 성장 가능성 중심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처럼 벤처전용 상장 트랙을 신설하고, 일정 요건 충족 시 심사 간소화 및 기간 단축 등 실질적 혜택을 주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상장 후 퇴출요건의 명확화 및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지금의 코스닥은 '들어오는 문'보다 '나가는 문'이 더 어렵다. 상장 이후 부실기업이 수년간 관리종목으로만 남아 투자자 피해를 야기하고, 시장 전체 신뢰도를 갉아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기준 없는 연명은 회수시장을 교란시키는 최대 리스크다. 일정 기간 이상 매출 미달, 자본잠식, 감사의견 비적정, 상장유지 조건 미이행 시에는 단계적 퇴출 로드맵을 법제화하고, 상장폐지 후에도 비상장 유통 플랫폼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도록 전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퇴출은 징벌이 아니라 회수 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이해돼야 한다.
셋째, 벤처 상장기업을 위한 유동성 지원 제도 도입도 병행해야 한다. 기술특례상장으로 진입한 스타트업은 상장 이후 오히려 유동성 부족으로 주가 하락과 투자자 이탈을 겪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LP 투자자 대상 보호예수기간을 유연화하고, 일정 기간 시장조성자(market maker) 의무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상장 초기 6개월간은 공모가 하락을 보완할 수 있는 정책성 매입제도나 정책형 코스닥 벤처 ETF 연계 매입 장치를 고려해볼 수 있다.
결국 회수시장은 단순히 상장기업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 성장단계에 맞는 회수 구조를 설계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기술이 선순환되는 질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코스닥은 그 선순환 허브가 돼야 한다. 지금처럼 '문은 좁고, 나가진 않는' 구조로는 자본시장의 신뢰도는 회복되지 않는다. 회수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투자자는 떠나고, 창업자는 정체되며, 국가는 뒤처진다.
새 정부는 회수시장 정상화를 위해 '코스닥 상장요건의 벤처 친화적 재정의'와 '퇴출요건의 실효성 강화'라는 두 축을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스타트업에는 기회의 문이고, 투자자에게는 안전한 회수창구며, 국가에는 지속가능한 성장 근간이다. 회수 없는 생태계는 썩는다. 이제는 나갈 수 있어야, 들어올 수 있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