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3월 24일

지난 주말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진화작업자 4명이 숨지고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이 사흘째 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북 의성과 울산 울주 등에서 산불이 잇따랐습니다. 23일 오전 기준으로 축구장 4600개 면적의 산림이 불에 탔습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4일 월요일자 신문 1면 사진은 경북 의성군 산불 발화지점 일대의 검게 탄 산등성이를 드론으로 찍은 장면입니다. 아침에 다른 일간지의 1면 사진을 보자마자, 사진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불이 크게 확산하고 있는 중인데 불에 탄 산림의 흔적을 보여주는 건 좀 앞서간 것이죠. ‘사진엔 정답이 없다’는 말을 버릇처럼 씁니다만, 이번은 ‘오답’이라고 느낀 1면 사진이었습니다.
■3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을 방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탄핵소추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즉시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에 복귀했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한 권한대행 탄핵 사유에 비상계엄 국무회의의 위법성과 내란 가담 의혹이 포함된 만큼 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날 결정에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한 대행은 직무에 복귀하자마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시작으로 대여섯 개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산불이 계속 번지는 중에도 한 대행 일정 중 ‘단 한 장’의 사진이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1면 사진은 국무회의에서 인사하는 한 대행과 최상목 전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습입니다. 사진제목이 장면을 잘 표현했습니다. ‘권한대행 반납합니다~’
■3월 26일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나흘째 이어졌습니다. 산불은 주변 도시로 번졌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있는 안동은 물론 청송·영양·영덕까지 불이 옮겨갔습니다. ‘주민 대피령’ 속보가 종일 뉴스채널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진화 인력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산불 진화율에 진전이 없었습니다. 현장 취재기자는 “물을 맞은 불길은 사그라진 듯싶다가도 강풍이 불면 ‘좀비’처럼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고 썼습니다.
1면 사진은 저물녘 의성군 단촌면 한 마을의 주택들이 강풍에 날아온 불씨에 불타는 장면입니다. 사진을 찍은 통신사 기자는 사진에 ‘전쟁터’ ‘지옥도’라는 제목을 붙여서 마감을 했습니다. 날은 어두워진 마을에 연기는 자욱하고 집집마다 붙은 불은 대책 없이 타고 있습니다. 전국의 산불 현장에서 수백 장 마감되는 사진 중에 오늘은 뭐가 핵심인지, 어떤 사진이 더 강렬한지, 어떤 규모로 보여줘야 하는지 등을 따지다가, 문득 재난사진을 품평하듯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민망해졌습니다.
■3월 27일

경북 의성 산불이 닷새째 이어졌습니다. 불은 인접한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인접 지역으로 번졌습니다. 산불로 이틀 새 20여 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가 급증했습니다. 이날 의성군 신평면 야산에서는 진화작업을 하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경남 산청 산불 진화 과정에서 숨진 진화대원 등 4명을 포함에 이번 산물로 인한 사망자는 24명(이날 오후 기준)으로 늘었습니다. 산불로 인한 희생자 규모는 역대 3번째입니다. ‘산불 참사’라 해야 할 사안입니다.
의성군 등운산 자락에 있는 사찰 ‘고운사’가 소실된 장면을 1면 사진으로 골랐습니다. 전날 밤 ‘고운사 소실’ 속보는 있었지만, 거센 불길에 현장 접근이 어려워 다음 날 아침에야 소실된 사찰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천년고찰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만큼 화마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3월 28일

영남 지역의 대형 산불이 일주일째 이어졌습니다. 이번 산불은 사상 최대이자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산불 영향구역은 약 3만 8427ha로, 여의도 면적의 124배에 달하는 산림이 불에 탔습니다. 사망자는 28명으로 산불사망자 집계가 시작된 1987년 이후 종전 최다였던 1989년(26명)보다 많습니다. 위성사진 분석결과 의성 산불은 시간당 8.2km 속도로 확산했습니다. 역대 가장 빠른 확산 속도라고 산림당국은 밝혔습니다.
산불 사진이 연일 1면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이틀, 사흘 안에 진화되는 산불이라면 머릿속에 1면 사진의 패턴이 간단히 그려집니다. 하지만 1주일 이상 지속하는 산불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앞서 1면에 썼던 사진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걸 전제로 들여다보면 막상 그런 사진들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이날은 사상 ‘최대 피해’라는 뉴스에 맞춰 드론을 띄웠습니다. 광범위하게 타버린 산림을 규모 있게 보이도록 찍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4일자에 쓴 ‘오답’ 사진과 비슷한 사진이라 회의에서 배제됐습니다. 사건의 리듬을 놓친 사진은 제때 써야 할 사진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1면 사진은 산불 진화에 동원된 군 장병들의 모습입니다.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완전한 진화를 위해 바람이 멎기를, 비가 내려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산불 현장의 단비처럼 우리가 ‘불면의 밤’을 견디며 기다리는 소식이 있지요. 그나저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은 도대체 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