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장에 국민의례와 애국가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을 거치며 국민 대신 시민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를 뒤집듯 국민이라는 말이 되살아나고 있다. 고작 글자 하나 다를 뿐이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감각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12·3 쿠데타의 경험으로부터 얼마나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갔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날 밤 국가는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상식은 배신당했다. 배신의 경험은 국가를 질문에 부치게 만든다.
그 질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0년 5월 계엄군은 광주의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고,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국가의 정당성을 추궁하는 질문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인 지난 11년 전, 세월호의 침몰을 목격한 시민들은 비통함을 담아 “이게 나라냐” 물었다. 국가가 시민을 지켜주지 않는 경험은 반복되고, 그 반복의 오랜 역사가 트라우마로 되살아난다. 만약 자국민에게 총을 겨눈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리에 편안히 안착하려면 이런 역사에 눈감아야 한다. 국민이라는 글자에는 국가에 대한 배신감, 무너져가는 사회에 대한 위기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12·3 이후 국회는 계엄법 개정안을 57건이나 발의했다. 그 숫자는 의원들이 느꼈을, 잡혀가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는 두려움의 크기를 보여준다. 동시에 계엄에 대해 온갖 제한을 가하려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의 자의적인 계엄 선포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한다.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선포되는 계엄은 법과 권리를 무효화하는 무법천지를 창출한다. 일단 계엄이 실행되면, 법에 의한 권력의 견제, 시민의 기본권 보장은 이뤄지지 않는다. 국회가 해제 요구를 의결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다시 계엄을 선포하면 그만이다. 12·3 쿠데타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법절차가 아니라 파국을 막으려는 군인과 시민의 노력이었다.
국회는 헌법의 계엄 조항과 계엄법을 제정했던 제헌의회의 한계를 반복하고 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조봉암 의원은 계엄 관련 조항이 독재의 폐단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그 외에는 계엄의 필요성을 의문 삼지 않았다. 1948년 여순사건에서 ‘사람 죽이는 계엄’을 겪은 의원들은 1949년 계엄법을 제정하며 여러 제한을 두려 했으나, 역시 계엄과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후 계엄법은 두 차례 부분 개정이 이뤄졌을 뿐 근본적인 한계를 그대로 내장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이다. 12·3 쿠데타와 그것이 상기시킨 숱한 국가폭력의 기억을, 그것의 의미를 질문해야 한다. 질문은 미래에 국가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출발점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계엄이 필요한가? 계엄 외에도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긴급명령권을 얼마든지 지니고 있다. 헌법에서 계엄은 삭제되어야 한다.
나아가, 현재 계엄이 해제됐어도 비상사태는 철회되지 않았다. 윤석열 구속 취소가 보여주듯 기존 법률의 효력은 자의적으로 정지되고 있다. 극우세력은 비상사태를 타개하고자 “혁명”과 “저항권”을 주장하며 헌정질서를 전면 부정한다. 저들은 비상사태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 조기 대선을 꿈꾸며 12월3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안일하게 믿었다. 그러나 내란 진압 이후의 국가를 질문하지 않는 이상, 정권교체는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대통령과 헌법재판소가 헌법 수호의 역할을 저버리고, 법조 엘리트의 과두 지배와 극우세력의 준동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헌법과 민주주의의 ‘진정한’ 최종 보루인가? 순응하는 국민의 자리를 의심했던 시민들은 5월 광주에서, 12·3 쿠데타에서 불복종과 저항권 행사로 불의한 국가에 맞섰다. 결국 망가진 사회를 지키는 건 언제나 평범한 시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