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좀 있었어요. 역대 최고의 그림을 그렸죠.”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사진)는 1983년을 이렇게 돌아봤다. 1982년 21세 바스키아는 유럽의 권위 있는 미술제인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역대 최연소 화가로 참가했다. 앤디 워홀은 물론 요제프 보이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이 톰블리 같은 거장들과 함께 전시했다. 이듬해엔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 시기 야심작이 ‘미술관 경비원(브로드웨이 멜트다운)’이다. 그림은 1983년 로스앤젤레스의 거고지언 갤러리에서 연 그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란 출신 건축가 캄란 디바가 구매했다. 이후 2013년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933만7250파운드(약 172억원)에 낙찰됐다.

전성기 바스키아의 대표작 ‘미술관 경비원(브로드웨이 멜트다운)’이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에 출품된다. 다음 달 23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 1관에서 열리는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바스키아 특별전이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기호와 상징의 관점에서 조명한 이번 특별전에는 9개국에서 모은 회화와 드로잉 70여 점, 창작 노트 전 8권이 전시된다.

13일 오전 9시부터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한다. 35% 할인가에 13~19일 수퍼 얼리버드 티켓을 한정 수량 발매한다. 이어 20~31일에는 30% 할인하는 2차 얼리버드 티켓을, 다음 달 1~22일엔 20% 할인하는 3차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한다. 모두 놀(NOL) 티켓(구 인터파크 티켓), 네이버, 크림(KREAM), 카카오톡 예약하기, 예스24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와 함께 26일부터 중앙일보의 콘텐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 멤버십 The Art’에 가입하는 회원들에게는 바스키아 특별전 초대권을 증정한다. 경품 제공 이벤트도 마련했다.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에서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을 다녔고, 프랑스어·스페인어를 배웠다. 뉴욕의 대안학교인 시티애즈스쿨에서 알 디아즈를 만나 ‘뻔하고 식상한 짓거리’를 뜻하는 ‘SAMO(Same Old shit)’라는 이름으로 그라피티 화가로 활동했다. 1981년 첫 개인전에 이어 1983년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과 협업하는 등 ‘현대 미술의 왕자’로 활약했다. 1987년 워홀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충격을 받은 바스키아는 은둔 끝에 이듬해 작업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2일은 살아 있었다면 65세였을 그의 37주기다. 화가로 활동한 8년간 3700점 넘는 작품을 남겼다.

바스키아는 거리의 낙서를 갤러리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재즈와 힙합, 복싱과 야구, 만화와 광고 등을 폭넓게 아우르며 현대미술의 폭을 넓혔다. 그는 줄곧 쓰고 그렸다. 그의 그림을 마주하면 스프레이로 칠한 왕관이나 공룡·해골 같은 도상 외에 휘갈긴 단어에도 눈길이 간다. 뭐라고 쓴 걸까. 전시장에선 배우 박보검의 목소리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다. 박보검은 오디오 가이드 내레이터로 참여, 바스키아의 세계로 안내한다. 내년 1월 31일까지. 성인 2만4000원.
추천! 더중플-세기의 바스키아
스물 여덟, 영원한 청춘으로 남은 바스키아, 어떻게 미국의 대표 화가로 자리잡게 됐을까. 거리의 낙서를 갤러리로 가져온 ‘혁신의 아이콘’ 바스키아가 예술가로 활동한 8년, 짧고 굵은 여정과 그 후의 이야기.
28세 바스키아 최후의 작업실…앤젤리나 졸리는 왜 빌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