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경찰 장갑차가 오토바이 택시 기사 아판 쿠르니아완을 치고 가는 영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시위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분노한 시위대가 국회의원과 재무장관의 집을 습격해 방화와 약탈로 이어지는 폭력 사태로 번졌다. 10명의 사망자도 발생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급하게 중국 방문을 취소했다가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권력 카르텔로 인한 불합리 구조
정치적 격변 사태 휘말린 동남아
냉정한 판단으로 리스크 관리를
시위의 도화선은 국회의원 580명에게 매달 5000만 루피아(약 417만원)의 주택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정부 결정이었다. 자카르타 최저 임금의 10배,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지역의 최저임금 20배가 넘는 금액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부 의원이 이를 비판하는 시민을 “바보”라고 조롱한 것이다.
의원 특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쌀값 급등으로 서민들이 고통받는 가운데 전임 농업부 장관과 신임 노동부 차관이 각각 13억9000만 루피아(약 1억1860만원)와 55억 루피아(약 4억6890만원)의 거액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관련자의 집에서 현금과 스포츠카가 발견되며 정치권 부패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견제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주요 정당 8개 중 7개가 연정에 참여해 국회 의석의 80% 이상을 장악했다. 나머지 투쟁민주당조차 ‘야당’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견제 기능을 포기한 상태다. 정치권의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제동을 걸 유일한 수단은 SNS 비판과 거리 시위뿐이다. 시위대의 ‘17+8 국민 요구’에는 군의 치안 개입 중단과 의원 특혜 동결, 국회 개혁, 재산 공개 등이 담겼다.
부패인식지수 하위권 포진한 동남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사태는 단순한 ‘사회 혼란’이 아니다. 성장에 가려져 있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100만명이 넘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 등 비공식 노동자의 불만, 중산층 감소 등 커지는 빈부 격차가 시위의 사회적 배경이다.

겉으로 보이는 인도네시아 경제 상황은 장밋빛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1조4000억 달러의 세계 16위 경제 대국이자 브릭스(BRICs) 가입으로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다. 2024년 경제성장률(5.03%)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인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2019년 230억 달러에서 2024년 553억 달러로, 불과 5년 만에 2.4배 이상 증가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8% 성장률을 공약했지만 국제기구와 글로벌 투자은행은 이를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지적한다. 구조적 한계가 성장 동력을 제약하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세계 경제 질서 재편 속에서 외자 유치와 수출 여건이 악화하는 가운데 내수도 침체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시위 상황에서 급락한 주가지수와 흔들리던 환율은 일단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정치 불안이 반복되면 투자 위축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시장의 신뢰를 받던 스리물리야니 재무장관을 지난 8일 전격 교체하자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신임 재무장관이 성장 드라이브를 강조하면서 재정 건전성 완화와 포퓰리즘 우려가 커지고 경제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정치적 무능과 제도화한 부패, 그에 따른 사회 혼란은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여름 동남아시아 일대가 정치적 격변에 휩싸였다.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는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 처리 과정에서 해임됐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개혁 의지 부족으로 비판받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5456억 페소(약 11조원) 규모의 홍수 방지 사업 중 상당수가 ‘유령 사업’으로 드러나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24년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인도네시아(99위)와 태국(107위), 필리핀(114위) 모두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과 비교해도 대부분 국가의 순위와 점수가 정체되거나 악화했다.
동남아의 부패는 집중된 권력과 불투명한 입법 절차, 연줄 정치가 공공재를 사적 이익으로 전용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이제는 ‘제도화한 부패’가 된 것이다.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갖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시민사회의 견제를 차단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 성장과 함께 시민 의식이 높아지며 이에 대한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동남아 정치 리스크 대비 전략 세워야
인도네시아 등에서 발생한 시위는 단순한 혼란이 아닌 구조적 문제의 폭발이다. 태국과 필리핀 등은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성장을 이어왔지만 정치 시스템이 국가 경쟁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만큼 시민 사회의 요구를 제도화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축할 역량을 키우지 못한다면 성장 모멘텀은 언제든 꺼질 수 있다.
이러한 도전적 상황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와 관련해 개별 기업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동남아 정치 리스크에 대한 체계적 대비로 지원하고, 동시에 기업은 현지 정부·국영기업과의 관계 중심 리스크를 관리하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뉴스 헤드라인에 이끌려 극단적인 공포심에 휩쓸리기보다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공포에 사로잡힌 접근은 성장 시장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리스크 없는 해외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남아의 정치적 불안정을 인정하되 이를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접근하는 것이 진짜 전략이다.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