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예산 전반적으로 유지…소폭 늘어
일자리·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여전히 낮아
복지는 숫자가 아닌 '손에 닿은 현실' 돼야
정부는 매년 장애인 활동지원, 일자리, 건강권 등 예산을 확대하고 새로운 시범사업도 추진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습니다. 제도는 있지만 접근은 어렵고, 예산은 있지만 삶은 바뀌지 않는 현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예산의 구조적 한계를 살펴보고, 장애인 복지 예산의 실효성을 짚어본다.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정부는 '포용국가'를 강조한다.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위한 예산도 해마다 소폭이나마 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활동지원 서비스, 일자리, 건강권 보장 등 핵심 정책들은 수치상으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상자 제한, 인력 부족, 제도 설계 미비로 인해 장애인의 생존권과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13만명에게만 열린 활동지원…등록장애인은 263만명
20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 수는 263만1356명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는 지체장애가 43.0%로 가장 많다. 이어 청각장애(16.8%), 시각장애(9.4%), 뇌병변장애(8.9%), 지적장애(8.9%) 순이다. 장애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5.1%를 차지하면서 장애인 복지 예산도 증가하는 추세다.

장애인복지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약 2조5323억원이 편성됐다. 전년(2조2846억원) 대비 2477억원이 증액됐고, 서비스 대상자도 9000명 확대된 13만3000명에 이를 예정이다. 활동지원 단가도 시간당 1만6620원으로 2.9% 인상됐다.
그러나 전체 등록장애인(263만명) 중 이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은 9명 중 1명꼴(11.7%)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활동지원은 중증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돌봄 인력을 배치하는 핵심 제도지만, 정작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1 장애인삶 패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자의 55.4%는 '지원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맞벌이 가정의 경우 등하교 지원, 야간 돌봄 등 실질적 필요 시간대에 활동지원사 매칭이 어렵다는 호소가 잇따른다.
문제는 이에 따라 돌봄 부담이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이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직장을 포기하거나, 하루에 2~3시간밖에 외출하지 못하는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가족의 희생'으로 메워지는 것이다.
김민선 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활동지원 서비스에 추가 예산을 투입해 활동지원 시간을 대폭 확대하고, 활동지원사 처우 개선과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며 "본인부담금을 낮추는 등 이용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을 병행해 장애인의 생존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자리는 공공근로 중심…지속 가능한 고용은 '요원'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참여를 위한 일자리 지원 역시 예산은 증가 추세다. 지난해 기준 보건복지부의 직접일자리 사업을 통해 약 3만1546명에게 공공근로형 일자리가 제공되고 있으며, 해당 예산은 2227억원 규모다. 정부는 올해 공공근로형 일자리를 대상자를 3만5000명으로, 예산은 2345억원으로 119억원 늘렸다.
하지만 이는 전체 등록장애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장애인 고용률은 34.0%로, 전체 인구 고용률(63.3%)의 절반 수준이다. 경제활동참가율 격차 역시 여전하다. 정부 일자리 사업 참여 인원도 제한적인 데다, 주로 단기·저임금의 공공근로 중심이라 지속가능한 고용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장애인 고용의 구조적 문제는 민간 부문으로의 진출이 막혀 있다는 점이다. 직업훈련과 맞춤형 취업알선 서비스가 부족하고, 민간 기업의 장애인 고용장려금 지급도 절차상 어려움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예산을 통한 일자리 확대는 공공부문 단순 일자리 외에도 직무 다양화, 직업 교육, 고용 연계 인센티브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 '유명무실'…건강권은 어디로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은 복지정책의 근간이지만, 관련 예산은 여전히 열악하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 장애인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작년 기준 등록장애인 중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은 144만5782명으로 전체의 절반(55.3%)을 넘겼다.

그러나 의료 접근성과 재활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히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도입 취지와 달리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연간 500억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 2020~2021년 2년간 집행된 예산은 고작 2억원에 불과했다. 시범사업 참여자도 3차에 걸쳐 1300명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올해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의료지원형 거주시설 모델을 신규 도입해 간호인력 추가 배치 등에 6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원대상이 극소수에 그치는 시범사업으로는 보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현장에선 약 복용에 대한 안내를 받을 곳이 없다는 기본적인 어려움조차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여러 처방약을 동시에 복용해야 하는데, 정확한 복용 시간과 순서에 대한 상담조차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도 국가에 가장 바라는 지원으로 '의료보장'이 26.9%로 소득보장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의료적 수요는 크지만, 관련 예산과 인프라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탁상공론 정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장애 분야 사업 예산은 증가하는데…실효성은 의문
정부는 매년 장애인 복지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활동지원, 일자리, 건강권까지 항목별로 예산 증가 폭도 크다.
일례로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예산은 작년 66억6900만원에서 올해 92억2900만원으로 38% 늘었다. 장애인 노인 자립생활을 위한 보조기기 실용화 연구개발(R&D) 예산도 작년 57억원에서 올해 87억2500만원으로 53% 증액됐다.
문제는 '설계와 전달'이다. 수치상의 증액만으론 장애인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예산이 '누구에게',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따지는 일이야말로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복지는 숫자가 아닌 '손에 닿는 현실'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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