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세 엄마, 정신이 돌아왔다…80세 아들이 쓴 ‘달력 뒷면’

2025-08-12

헬스+ 100세의 행복

내가 먼저 죽겠단 생각이 들었다. 엉엉 울면서 딸애한테 할머니 요양원을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 허정례(101)씨로 말할 것 같으면, 6·25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스물다섯 나이에 두 형제를 홀몸으로 키워낸 분이다. 한밤중 인민군에게 끌려가던 남편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어머니 배 속엔 내 남동생이 있었다.

신혼살림을 꾸렸던 서울에선 젊은 여자가 혼자 살 엄두가 안 나 어머닌 짐을 싸 고향인 충북 괴산으로 내려가 동생을 낳았다. 나는 다섯 살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보따리를 이고 장터를 돌았다. 행상도, 보따리상도 마다치 않았다. 이웃들은 “남의 등에 업혀 사는 법이 없는 여자”라고 입을 모았다.

장성한 아들들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 셋방살이 14번을 전전한 끝에 서울 강동구에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만 해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2년 전부터 어머니가 이상해졌다. 2019년 노인대학 4년제 졸업장을 받아올 정도로 정정했던 분이 어제 일도 깜빡깜빡하셨다. 때론 밤에 깨서 거실을 돌아다녔고, 꼭두새벽부터 밥해 주겠다고 부엌칼을 쥐고 가스 불도 켰다. 다리 근육이 빠지면서 보행기가 없으면 거동도 힘들어졌다. 아내와 난 365일 24시간 긴장 상태였다.

나도 살고 싶었다. 내 나이 곧 여든 살. 늙어 가는 내가 더 늙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고달팠다. 이제는 쉬고 싶었다. 매일 데이케어센터를 오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마중하며 삼시 세끼 식사를 챙기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도 지쳤다.

이제는 나를 위해,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따로 지내는 게 맞다고, 전문가 손길이 어머니 건강에도 더 좋을 거라고 스스로를 수백 번 달랬다.

〈100세의 행복〉에서 ‘자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00세 시대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효자를 둔 게 장수 비결일까, 건강하게 장수했기에 자식이 효자가 된 걸까.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들의 이야기에 답이 있었다.

목차

📌 보내야 산다 vs 같이 산다, 그 끝에서

📌 지친 아들 다시 웃게 한 아침 루틴

📌 돌봄으로 얻은 뜻밖의 이득

📌 노노부양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100세의 행복〉지난 이야기를 복습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 시체실서 17시간 만에 눈 떴다… K조선 대부, 93세 신동식 기적

② 90세에 처음 태권도 배웠다… 101세 ‘꽃할배’ 칼각 발차기

③ 고아 소녀, 50만원 옷 걸쳤다… 부자 된 95세 할머니의 철칙

허정례씨의 아들 김복희(79)씨는 여전히 어머니와 함께 산다. 요양원 입소 신청서를 세 번 썼지만, 세 번 다 찢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들 곁에서 올해 101세가 됐다. 그것도 건강하게, 깜빡깜빡하던 섬망 증세도 한결 누그러졌다.

요양원 입소를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집 근처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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