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화에선 사람이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딱 2가지 질문만 받는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기뻤나’ ‘남도 기쁘게 했나’, 둘 다에 ‘예’ 대답할 수 있으면 천당행이라는데, 생각해보니 천당은 살아서도 갈 수 있는 곳, 기쁘고 즐겁게 흐뭇하고 뿌듯하게 천국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가 지난 19일 서른 다섯번째 생일을 맞았다. DJ 배철수씨(72)는 오프닝 멘트에서 “천국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1990년 3월19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그런 나날들이 쌓여 35년이 지났다. ‘배캠’은 명실공히 국내 최장수 방송 프로그램이다. 그 사이 30대 음악인은 이제 70대의 완숙미 넘치는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배씨는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 M라운지에서 열린 ‘배캠’ 35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하루 일과 중에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스튜디오에서 방송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면서 “이렇게 얘기하면 ‘그럴 리가 있느냐, 일인데 행복하냐’고 할 수 있는데 진짜 그렇다”고 말했다. ‘생일 방송’ 때 오프닝 멘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백이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대중예술인이 35년 동안 묵묵히 한 자리로 출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배씨는 매일 방송 시작 2시간 전인 오후 4시 방송국 스튜디오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남들은 ‘왜 이렇게 일찍 오느냐’고 묻는다. 그는 “4시부터 들어가서 작가가 써준 원고를 읽어 보고, 어떤 음악이 어울릴지 생각도 하고, 청취자 신청곡 중에 기억이 가물가물한 곡이 있으면 음악도 들어보는 등 방송을 준비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배씨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걸 생계를 꾸려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늘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후배 방송인들이 선배 DJ에게 조언을 구할 때면 그는 이 말부터 해준다고 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배씨는 “매일매일 방송을 하다보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또 다른 말을 할 것이고, 그러면 청취자에게 신뢰를 잃는다”라고 했다. 순발력이 요구되는 매일매일의 생방송이지만 그에게는 말을 허투루 지어내지 않는다는 ‘35년의 노하우’가 몸에 배었다.
‘배캠’은 DJ에게 다음달 꽤 긴 휴가를 선물할 예정이다.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남태정 피디는 “‘배철수와 아이들’ 같은 느낌으로 진행자 자리에 뮤지션들을 채울 예정”이라며 “옥상달빛, 윤도현, 이루마, 유희열씨가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또 하반기에는 미국 시카고 ‘롤라 팔루자’ 축제 현장에서 현지 송출 방송을 제작할 예정이다. 5년 전 방송 30주년 때 영국 애비로드에서 방송한 것과 비슷한 콘셉트다.
배씨에게 올해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40년 만에 새 앨범 ‘플라이 어게인(Fly Again)’을 발매했다는 점이다. 1978년 TBC 해변가요제로 데뷔해 그룹사운드 활주로와 송골매에서 활약했던 뮤지션이라는 본업을 오랜만에 되찾은 것이다. 배씨는 “예전 초기 앨범을 들어보면 사운드가 엉망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다시 녹음하자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었고, 이번에 방송 35주년을 맞아 청취자 여러분에게 드릴 선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음반 홍보를 쑥스러워하면서도 “들어보시면 진짜 좋다. 음악인 배철수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앨범으로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배씨는 “지난해 몸이 아파서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 방송을 못 한 적이 있다”면서 “그때 몸은 늙어가고 쇠약해가지만, 정신만은 늙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 생각을 가지고 데뷔곡인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처럼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며 “방송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는 청취자와 MBC, 제 몸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