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2024-12-18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물들이 많다지만, 그 ‘희한한 동물들’의 목록 상단에 위치할 만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나무늘보다. 남아메리카의 울창한 정글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나무늘보를 처음 문명 세계에 알린 것은 16세기 스페인의 한 탐험가였다. 그는 나무늘보를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동물”이라고 혹평했고, 이 부정적인 첫인상은 이후 나무늘보의 이미지를 ‘너무나 게을러 형편없는 짐승’으로 고착시킨다. 나무늘보에 대한 경멸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는데, 나무늘보의 영어 명칭인 ‘sloth’는 7대 죄악 중 하나인 ‘나태(sloth)’에서 그대로 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늘보에게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근원에는 애초에 편향된 시선이 있었다. 나무늘보의 원래 서식지는 남아메리카의 빽빽한 열대우림이지만, 이들을 처음 대면한 사람들은 그들을 원래 살던 나무 위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땅바닥에 내려놓고 살폈다. 땅 위에 내려진 나무늘보들은 그저 엎드려 있다가, 움직일 때조차도 땅에서 몸을 떼는 법이 없이 바닥을 느릿느릿 기어다닐 뿐이었다. 당시 사람들 눈에는 사지가 멀쩡히 달린 동물이 온몸을 바닥에 붙이고 기어다니는 모습이 낯설고도 기괴해 보였기에 이들을 천하의 ‘게으름뱅이’라고 낙인찍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늘보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몸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땅 위에 사는 육상동물들은 사람이든 네발짐승이든 중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의 몸에는 중력에 저항해 몸을 세우는 근육이 반드시 존재한다. 하지만 나무늘보는 일생 대부분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산다. 그것도 손발로 나뭇가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길게 휜 발톱을 고리처럼 사용해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말이다. 나무에 매달리면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몸은 아래로, 즉 중력의 방향으로 늘어지므로 저항할 필요가 없다. 또한 발톱에 걸리는 부담을 줄여 더 오랫동안 매달리기 위해서는 몸이 가벼운 것이 유리하다. 이로 인해 나무늘보의 팔다리에서는 근육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스스로의 몸조차 버틸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나무늘보에게 땅에서 네발로 걷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중력이 수십 배인 행성에서 지구에서와 동일한 속도로 달리기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널리 퍼진 이후에도 나무늘보에 대한 시선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19세기 학자들은 나무늘보를 “도무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 수 없는 쓸모없는 동물”로 여겼다. 나무늘보는 몸집도 작고 근력이 부족해 힘도 약한 데다가 시력조차 나쁘며, 기다란 발톱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보호수단도 없다. 한마디로 생존에 유리한 습성은 조상으로부터 하나도 물려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무늘보는 역으로 이런 불리한 점을 극대화해 살아남았다.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환경에 동화되어 가만히 있음으로써, 움직이는 단백질 공급원을 노리는 포식자들의 눈에 스스로를 별 영양가 없는 식물의 부속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나무늘보들의 털은 온통 초록색 이끼로 뒤덮여 있어 열대우림에서 훌륭한 보호색이 되어준다. 게다가 느릿한 움직임과 적은 근육량으로 열량 소모량도 낮아, 하루에 나뭇잎 몇 장만 씹어도 충분해 많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돌려도 나뭇잎을 뜯을 수 있도록 목이 270도까지 돌아가며, 섭취한 나뭇잎을 소화하는 데 50일이나 걸릴 정도로 신진대사율도 낮다. 이러한 에너지 긴축생활사를 통해 나무늘보는 인류보다 훨씬 오랜 기간인 6400만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무늘보의 게으름은 악덕이 아니라 매우 효율적인 생존전략인 셈이다.

인간 사회가 원시성을 벗어나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 중 분명한 하나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선의 확장이다. 내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보고 편협하게 속단하고 고정적인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해 헤아리며 유연하고 관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권력과 지위가 있는 나의 생각이 옳다며, 더 많은 이들이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외치는 말에 귀를 닫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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