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전의 미술

2025-05-01

손잡이가 두 개 달린 항아리와 두 종류의 그릇이 있다. 터키 남서부 하실라르에서 발견된 것인데, 기원전 5000년경의 도자기로 신석기시대 작품으로 여겨진다.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추상적인 기하학적 문양이 돋보인다. 항아리의 손잡이 주변을 동심원이 장식했고, 추상적으로 도식화된 인간 형상이 이채롭다. 그릇도 굵은 기하학적 선들이 반복되는 리듬감으로 덮였다. 엷은 황갈색과 흰색 바탕 위에서 붉은색 문양들이 어울리면서 색조들의 대비와 조화도 이루어냈다. 이런 도자기와 추상적, 기하학적인 장식이 신석기시대에 이루어졌다니 믿기지 않는다.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10000년경 우기가 끝나고 건조기가 시작되면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밀림과 초원 지대가 반사막으로 변해갔다. 인류는 큰 강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렵과 채집을 대신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가축과 농경에 의한 생산경제가 시작됐고, 떠돌이 생활 대신 한곳에 정착해서 촌락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정착생활을 하면서 가장 필요했던 물건은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이었다. 그래서 도자기가 발달했고, 종류도 지역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서 의식의 변화도 나타났다. 구석기시대에는 자연에 있는 것들을 거두면서 살았고,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힘에 이끌려서 생활했다. 하지만 신석기시대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연을 개척하고 경작해가면서 스스로의 생활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야만 했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이 섭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막연하지만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나타났고, 영혼불멸사상이나 사물을 생략하고 단순화하는 추상적인 사고도 등장했다. 인간관과 세계관이 변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담아내는 미술 작품도 달라져야만 했다. 수준 높은 기하학적 문양과 정교한 도자기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도자기들이 좀 더 세련된 예술적 형태로 다듬어지면서 서남아시아에서 중심을 이룬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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