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산업 이끄는 오너 2·3세
코로나 이후 그룹 내 중장기 성장에 주력
제약·바이오 산업 전면에 차세대 재계 경영자들이 나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인 만큼 오너 2·3세들의 재계 진출 발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제약·바이오 산업이 미래 ‘캐시카우’로 떠오르면서 그룹 내 중장기 성장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8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지난해 연말 정기 인사에서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SK(주)에 신설된 ‘성장 지원’ 수장에 발탁했다.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본부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SK지주사 및 SK바이오팜 핵심 보직을 맡게 됐다.
SK바이오팜이 주력하는 분야로는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와 중장기 성장을 위한 RPT(방사성의약품 치료제), TDP(표적단백질분해 치료제)가 있다. 최윤정 본부장은 그중에서도 RPT 사업 추진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정 본부장은 지난해 8월 SK바이오팜 컨퍼런스콜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하며 투자자들에게 RPT 사업 비전을 설명하기도 했다. 최윤정 본부장은 해당 컨퍼런스콜에서 앞서 도입한 ‘SKL35501’에 이어 최소 2개의 외부 후보물질을 추가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최윤정 본부장은 ”RPT는 아직 시장 규모가 작지만 향후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며 ”전임상 물질을 다수 확보하고 탄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2027년까지 글로벌 리더로서 입지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SK그룹에 최윤정 본부장이 있다면 롯데그룹엔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부사장이 바이오 사업을 이끌고 있다. 신유열 부사장은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직하며 그룹 내 바이오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신유열 부사장은 2023년 12월 롯데그룹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롯데바이오로직스에 합류했다. 롯데그룹은 2022년 6월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고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30년까지 인천 송도에 3개의 바이오 플랜트를 건설해 총 36만L 규모의 항체 의약품 생산설비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CDMO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롯데의 바이오 산업 강화 의지는 신유열 부사장의 행보에서도 나타난다. 신유열 부사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석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존슨앤존슨(J&J), 암젠 등 세계적 제약사들의 발표를 청취하고 산업 최신 동향을 살폈다.
신유열 부사장이 글로벌 바이오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유열 부사장은 이번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를 계기로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비즈니스 미팅에 나서는 등 바이오 산업에 본격적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3세인 담서원 전무 또한 바이오 분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담서원 전무는 지난해 리가켐바이오 인수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며 기업 내 체질 전환에 앞장섰다. 현재 담서원 전무는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로서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오너 2·3세들이 바이오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성장 가능성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정유, 석유화학, 조선 등 기존 사업이 정체를 맞으며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기업 내 의지가 높아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분야의 경우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으로 알려졌으나, 대기업 가운데 삼성이 성공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시장에 안착시키며 바이오 진출에 대한 자신감 또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제약 바이오 산업에 늦게 진입한 후발주자”라며 “예전까진 전통 제약사들의 영역이 뚜렷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공 사례가 대기업 진출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