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나라다. 대통령 트럼프는 왕처럼 군림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는 미국의 자랑이었고 다른 나라들에 이식하려던 중요한 가치였지만 이젠 약탈, 횡포를 일삼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체포, 구금하며 용납할 수 없는 인권침해를 저질러 놓고는 자신은 한국 노동자들을 내쫓는 데 반대했다는 뻔한 거짓말을 한다.
동맹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는 무조건 현찰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이를 조공에 빗대는 사람도 있지만, 동아시아의 조공은 상호주의적 공존의 질서에 바탕을 뒀다. 미국처럼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며 윽박지르는 것은 패권국가의 약탈일 뿐이다.
경주에서 열린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그랬다. 트럼프는 남의 잔치를 훼방 놓는 사람처럼 보였다. 정상회의에는 아예 참석하지도 않고, 그저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전부였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한국에는 1박2일 동안 있었지만, 직전에 들른 일본에선 2박3일을 머물렀다.
합리성, 공정성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을 상대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협상은 전쟁 같았을 거다. 무조건 3500억달러(약 500조원)를 현찰로 내놓아야 하고, 이익이 생기면 자기들이 다 챙기겠다고 압박하는 미국의 요구에 맞서는 일이었다. 장관급 회담만 23차례였고, 실무회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막무가내인 상대를 어르고 달래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아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고군분투 덕에 심각한 사태를 막고 협상도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합의 이후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또 모를 일이다. 일관성 없는 돌출 행동으로 상대를 괴롭힌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과 가장 가깝다는 캐나다를 대하는 걸 보면 답이 나온다. 미국이 만들어내는 변수가 워낙 많다. 합의문에 서명하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을 것이고, 막상 서명을 마쳐도 대놓고 딴소리를 하며 떠들어댈 수도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미국 앞에만 서면 괜히 작아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만난 미국은 너무도 큰 존재였다. 미국 사람들의 덩치도 컸지만,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일본과 싸워 이긴 큰 나라를 상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만난 미국은 점령군이었다. 한국전쟁까지 치르고 난 다음엔 더했다. 일방적인 관계였고, 우리의 선택은 무조건 미국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그 꽁무니를 쫓는 것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긴 세월을 그저 넋 놓고 보내지는 않았다. 박노해 시인의 절창처럼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싶으면서도 날마다 “전쟁 같은 밤일”을 했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 절망을 곱씹고 한편으로 희망을 그리는 나날을 보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겠다는 열망이 한반도 남쪽을 가득 채웠다.
내란을 극복한 지금, 우리에겐 경제를 살리겠다는 열망이 크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민생지원금을 나눠 소비를 살리고 투자 회복세를 통해 3분기 성장률을 1.2%까지 끌어올렸다. 내수가 성장을 주도했고, 민간과 정부가 함께 기여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3분기 성장률이 0.1%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취다. 주식시장은 놀랍도록 역동적이다. 매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동성 영향도 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주가 상승은 코스피 5000 시대로 가겠다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효과를 본 덕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처럼 ‘잃어버린 시대’를 맞는 등의 사태에 대비해야겠지만, 그래도 한국은 1950년대와는 다른 나라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는 정치·경제·문화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선도국가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윤석열 내란 등에서 확인했듯이 국민의 역량은 위기마다 빛났다.
그래서 정부도 국민의 역량을 믿고 미국과 대등한 협력관계, 상호주의에 입각한 호혜·평등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앞에만 서면 위축되던 구시대의 잔재를 떨어내자. 우리가 만든 새로운 길을 가보자.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하나 되는 연대와 협력이 우리 모두를 더 밝은 미래로 이끄는 비결”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APEC 개막식 연설에서 밝힌 원칙이 우리의 길이다. 일방적 독주와 굴종이 아닌 연대와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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