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대 금융지주 순이익이 역대 최대치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난 23일 은행권은 연간 7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이 역대급 이자 수익을 거둔 만큼 상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은행권에선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 ‘관치 금융’이라며 볼멘소리를 낸다.
책 ‘부채로 만든 세상’을 통해 ‘부채 의존 경제’의 출현과 문제를 파헤친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이 취약차주의 빚을 탕감해주는 방식의 채무조정을 더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부채 의존이 실물 경제 성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문제의 시작점을 은행 제도에서 찾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금융시장 방어를 위해 이뤄진 무제한 유동성 공급에 대해선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부실 이연을 우려했다. 신 위원을 지난 3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신 위원은 책에서 은행이 신용을 창출할 수 있는 특권을 통해 무책임하게 대출을 늘린 결과 지금의 부채 의존 경제가 출현했다고 분석한다. 부분준비제도(예금의 10%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대출에 쓰는 것) 아래 은행의 방만한 대출은 필연적으로 뱅크런을 부르지만, 각 국의 중앙은행들이 은행들의 안전망으로 기능하면서 대출 경쟁이 확대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원래 부채는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며 실물 경제의 성장과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 성장은 정체돼 있는데 부채만 늘어나고 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한테 계속 돈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고, 그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이 볼 때 부채 의존 경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다만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이 12%에 육박하고, 가계 빚이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한국의 상황은 특히 우려할만 하다. 그는 “부채 의존 경제에선 ‘좀비기업’들에 대한 퇴출이 불가능해진다”면서 “대출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국내 기업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시장에선 정상 기업도 살아남기 힘들다. 좀비기업들의 덤핑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규제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신 위원은 단호하게 “총량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든 신규 대출을 줄이고, 기존에 나간 대출도 회수 혹은 탕감해야 한다”면서 “저소득자 등 취약 차주들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고 빨리 채무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은행의 빚 탕감은 무책임한 대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에 반시장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등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 역시 부실 이연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계엄 사태 이후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에 투입하고 있는 무제한 유동성 공급에도 우려를 표했다.
신 위원은 “지금처럼 불안한 시장에서는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긴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고 이연된 부실은 결국 다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풀린 유동성이 영구화되지 않도록 거둬들이는 것이 중요한데, 2008년 금융위기 때 풀린 유동성도 회수되지 않은 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책에서 그는 “과잉금융으로 잉태된 부채의존경제는 부채 양산이 멈추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는 부채 의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신 위원은 “쉽지 않다”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극단적 양극화, 민주주의 붕괴 등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