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디자인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내며, 이제는 독창적 도시 색깔을 가진 글로벌 도시로 부상했다. 콘텐츠 강국으로서 한국의 문화와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재평가되며, 다른 도시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해외 중심의 디자인 관념이 지배적이던 시대와 달리, 서울의 디자인은 이제 새로운 세계이자 미지의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5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막한 ‘서울디자인 위크 2025’가 막바지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행사는 ‘29CM’와 공동 주최로 하는 ‘DDP 디자인페어’, AI 시대 디자이너의 역할과 개인의 취향을 논의하는 ‘디자인 콘퍼런스’를 비롯해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함께 어우러진 도심형 축제로, 오는 26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디자인, 행정의 부속에서 도시 전략의 중심으로

과거 ‘전시행정’이라 비판받기도 했던 디자인 정책은 이제 도시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5일 DDP 아트홀 개막식에서 “디자인은 경제의 언어이자 산업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디자인 역량이 뛰어난 기업은 매출과 수익 면에서 업계 평균 두 배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서울시는 중소기업과 디자인 기업을 연결하고 ‘커리어업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20년 디자인서울을 추진하며 꿈꾸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이 돼, 어느덧 서울은 세계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도시이자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카테고리 크리에이터로 자리매김 했다.”며 “K팝처럼 ‘서울의 디자인’이 하나의 장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차강희 디자인재단 대표 역시 “좋은 디자인은 우수한 디자이너에게서 나온다. 디자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창작물이 브랜드로 성장하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스타 디자이너 발굴과 서울디자인위크를 세계적 마켓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목표”라고 말했다.
라이프 디자이너의 삶 체험

‘디자인, 디자이너, 디자인 라이프(Design, Designer, Design Life)’라는 주제로 15일부터 19일까지 아트홀에서 진행된 디자인페어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양태오, 문승지, 이석우, 조홍래, 이재민, 전채리, 백종환, 유보라, 석준웅, 모춘소호 등 서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10인의 디자이너가 주제관에 각자의 ‘영감을 주는 물건’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이 디자이너들만의 개인적인 취향과 이야기를 담은 물건들을 보며 디자이너의 은밀한 방에 초대받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구상한 것. 올해 디자인위크의 주제를 담은 공간으로 나의 취향은 과연 어떤 것일지 떠올려볼 수 있는 체험의 장이기도 했다.
디자인페어를 공동 주최한 29CM는 아파트 콘셉트로 꾸민 브랜드관을 선보였다. 페어 기간 동안 브랜드관 앞에는 ‘라이프 디자이너’로 변신하고자 하는 관람객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네 명의 페르소나를 통해 ‘인생이 맥시멀리스트’, ‘쉼 예찬론자’, ‘고요한 미식가’, ‘낭만적 실용 주의자’로 나눠진 다양한 브랜드를 둘러보며, 관람객이 스스로의 취향을 발견하도록 설계했다.
한편 영 디자이너 특별관에서는 19개 대학생 팀과 농심, LG전자 등 기업이 함께 상품을 개발해 디자인 솔루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AI 시대, 디자이너와 취향을 지켜라’ 기술과 감성의 균형을 묻다

17일부터 18일 양 이틀간 열린 디자인 콘퍼런스에서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시각 디자이너 전채리, 뇌과학자 장동선, 비주얼 디렉터 노희영 등의 디자이너, 연구자, 브랜드 관계자들이 ‘AI 시대의 디자이너’와 ‘취향의 미래’를 논의했다.
연사들은 공동적으로 AI 시대, 디자이너가 지켜야 할 핵심으로 ‘인간의 취향과 주체적 감각’을 꼽았다. 기술과 알고리즘의 확장으로 트렌드가 파편화되는 환경 속에서도, 개인적 경험과 실험을 통해 감각을 학습하고 이를 사회적 가치로 연결하는 과정이 디자인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도시 전체가 ‘디자인 플랫폼’이 되는 실험
관람객들은 남은 일정 동안 디자이너가 엄선한 서울 전역 150곳의 ‘디자인 스폿’에서 전시와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을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미술관’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디자인이 곧 도시의 언어’라는 서울시의 비전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올해 서울디자인어워드에서는 시상작 선정 방식으로 글로벌 전문가 심사와 시민 현장 투표를 결합한 거버넌스 형태를 선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참여한 리더에는 인도 디자인 정책을 선도하는 세계 디자인 기구 회장 프라디윰나 브야스(Pradyumna Vyas), 디자인 국제 네트워크 DESIS 설립자 에치오 만지니(Ezio Manzini), 베를린디자인위크 설립자 알렉산드라 클라트(Alexandra Klatt) 등이 포함됐다.
서울디자인위크는 서울의 세련된 취향과 K-디자인의 힘을 세계에 증명하는 자리다. 올해를 기점으로 서울시는 ‘서울 디자인’을 하나의 장르로 성장시키며, 지속가능성과 라이프스타일 등 미래 디자인의 흐름을 선도할 예정이다. 서울이 ‘디자인 도시’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취향을 잃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