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설악산 정상 대청봉은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전날 백담사에서 시작된 여정은 늦은 오후 봉정암에 달했고, 산속의 해는 생각보다 빨리 져서 해발 1200m의 사찰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산사에 울리는 우렁찬 목탁 소리와 함께 깨어나, 오전 4시부터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올해는 단풍이 늦게 든 탓인지, 산불 조심 기간으로 입산이 금지되기 전 마지막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풍이 완연하다는 느낌이 덜 했다.
그러다 소청을 지나 중청으로 접어들면서 드디어 고산지대 특유의 풍경이 나타났다. 같은 서어나무·떡갈나무·소나무인데도 그 크기가 산 아래에서 자라는 것의 반도 안 됐다. 게다가 죽어서도 꼿꼿이 서 있는 고사목은 하얀 줄기의 우렁찬 뻗음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싶었다.
이렇게 식물들이 달라진 이유는 날씨 탓이다. 거센 바람이 쉴 새 없이 부는 산꼭대기는 숨을 쉬기도 힘든 추위와 느닷없이 내리는 눈과 비가 식물을 괴롭힌다. 어쩌다 맑게 갠 날이면 강렬한 자외선이 식물의 잎조차 타들어 가게 한다. 생존의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고산지대의 식물은 키와 몸집을 키우지 않고 작게 만든다. 느리고 천천히 성장하면서, 대신 잎과 줄기를 작지만 단단하고 두껍게 만들어 비바람·추위·자외선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고사목이 죽었지만 썩지 않고 여전히 온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청봉을 오르면서 수도 없이 왜 여길 오르려 했을까 후회도 했지만, 돌아갈 수 없으니 주저앉지만 말자 다독였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 오른 산을 다시 또 죽기 살기로 내려온 후, 나는 내내 그 산꼭대기 식물들을 생각하는 중이다. 삶은 늘 그렇듯 정해진 답이 없다. 좀 더 빨리, 좀 더 크게, 좀 더 많이. 이게 모두의 답은 아닐 것이다. 조금은 천천히, 작고, 단단하게 살아도 되지 않으려나.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