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선박·선사에 수십억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중국산 선박을 이용하는 글로벌 선사부터 중국을 거치는 노선을 운영 중인 해운업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미국의 중국 선박·선사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에 패권을 빼앗긴 국내 조선업계에는 반사이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중국이 조선·해양·물류 산업을 부당하게 장악하고 있다며, 중국 선사와 중국산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국제 해상 운송 서비스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중국 선사 소속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최대 100만달러(약 14억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선박의 순선박 용적에 대해 t당 최대 1000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중국산 선박을 포함해 여러 선박을 운영하는 선사에 대해서는 미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산 선박에 대해 최대 150만달러(약 21억5000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제안은 다음달 24일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5 컨테이너 선사 대부분이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의 지난해 국가별 수주 점유율을 보면 중국이 전 세계 신규 수주 점유율 60%를 기록했다. 중국 조선업계는 최근 10년간 컨테이너선·벌크선 등 저렴한 선박 수주를 싹쓸이하며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번 조치로 중국 선박의 운송비용이 증가하면 국내 조선업계에 수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선박에 수수료를 부과할 경우 글로벌 선사들은 운송비용 부담으로 다른 나라 조선사에 발주 물량을 늘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형 선박을 만들어내던 중국이 이제는 빠른 속도로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도 진입하고 있다”며 “미국이 중국 선사와 중국산 선박에 수수료를 부과한다면 한국 조선업계에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제재로 중국 선사가 미주 노선에서 철수할 경우 한국 선사가 해당 노선의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또 중국 선사들의 미주 노선 운영 중단으로 공급이 감소하면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한국 선사들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미·중 간 무역 갈등 심화가 장기적으로는 해운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선박의 운송비용 상승, 항로 변경, 글로벌 교역량 감소 등 선사들의 운송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성진·손민영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리포트에서 “중국은 컨테이너 화물의 주요 출발지로 중국 정부도 향후 (미국과) 유사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며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맞규제에 나서면 선사들은 중국과 미국을 직접 연결하는 항로를 운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