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 경기침체, 생활고, 우울증 등 다양한 배경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자살이 전염병이 아님에도 전염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금 당장 비극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배우 김새론, 송재림 등 유명인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에 따른 ‘베르테르 효과’도 심각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10일 발표된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전체 자살률은 10만 명당 27.3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28.5명) 이후 최대치다. 남녀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남성의 자살률은 2021년 35.9명, 2022년 35.3명으로 소폭 변동을 보였지만, 2023년에는 38.3명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동안 자살률이 높았던 노인층에 비해 특히 50대 남성의 자살률이 크게 증가하였다. 여성의 자살률은 2021년 16.2명, 2022년 15.1명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2023년 다시 16.5명으로 증가했다.
한편 한국의 자살률은 OECD 38개국 평균 11.1명(인구 10만명당)의 2배가 넘었다. 한국 다음은 리투아니아(18.5명), 슬로베니아(15.7명) 순이었다. 2000년 이후 OECD 국가의 자살률은 대부분 하락 추세다.
2000년 자살률이 높았던 라트비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의 국가는 이후 지속 하락해 현재 15명 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자살률이 20명대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가 OECD 부동의 1위 자살률을 보인 것은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다. 자살률과 동전의 양면 격인 삶의 만족도를 보더라도 한국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2021∼2023년 6.06점으로 OECD 평균(6.69점)보다 0.63점 낮았으며, 전체 38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문제는 이렇게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증가하고 있는데도 자살률 증가의 구체적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통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자살의 원인은 원래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질병, 심리적 어려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으나 세계에 비교하여 유독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통계가 없다.
자살의 원인을 알아야 당국의 기민한 대응이 가능한데 현재는 매우 제한적인 통계 내용만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데도 불구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근거에 기반해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지난해 초 50대 남성 자살이 급격히 늘었는데 여타 경제적 요인 등이 결합했을 텐데도 ‘연예인 사망으로 인해 늘었겠구나’하는 식에 막연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IMF 이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원래 자살이 흔한 나라가 아니었다. 머리털 하나도 함부로 자르지 않았던 유교적 문화 전통이 강하고 가족 간의 유대감이 높은 우리나라는 부모가 남겨 준 생명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인 나라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전통의 가치는 사라지고 심리적 공황 상태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고도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고 97년 IMF 이후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 안전망의 부재 등의 자본주의사회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으며, 물질만능, 개인주의 같은 불완전한 가치관의 만연, 가족의 해체, 독거노인 문제처럼 사회적 고립의 심화 등 이런 사회적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서 최근 자살의 급증을 불러온 원인이라고 많은 학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자살을 이기적(egoistic) 자살, 이타적(altruistic) 자살, 무통제적(anomic) 자살로 구분하는 데 이기적 자살은 실연 후 자살처럼 자신의 이기적 요구가 좌절된 것에 대한 자살을 말하고, 이타적 자살은 사회의 가치관에 지나치게 융합되어 자기희생의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순교나 민주주의 열사 같은 자살을 말한다.
반면 무통제적 자살은 사회집단과 개인의 융화가 급격히 차단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경제적인 파산이나 경제공황, 사회적 규범과 가치가 붕괴하여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분류에 의하면 현재의 자살률 증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경제적 혼란으로 인한 자살률이 급증하는 현상으로 추정하여 볼 때 아노미적 사회 혼란에 따른 결과로 생각된다.
이처럼 자살은 의료만 강화해서 막을 수 없고, 고용·교육·복지 등 총체적 사회 안전망과 연결돼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자살률의 급증은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한국은 이미 자살의 응급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정부 당국의 시급히 사회 전반적인 자살의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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