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만난 한 정치인은 자신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수익률이 수년 동안 연 1~2%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 돈이면 이렇게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로 방치하겠냐며 금융회사를 원망했다. 또 다른 자리에서 만난 금융회사 선배는 퇴직금으로 바이오-헬스케어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장기 투자가 됐다며 얼굴을 붉혔다.
사람들이 투자 손실을 경험할 때 보이는 행동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보이는 모습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첫째는 부정이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곧바로 이렇게 반응한다. “아니에요. 전 아니에요. 사실일 리 없어요”. 자신의 투자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 같이 행동한다.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긍정적인 말에만 귀 기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무시한다.
둘째는 분노다. 퇴직연금제도에서는 가입자 자신이 어떤 금융상품으로 운용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데 수익률이 기대와 다르면 금융회사에 분노를 쏟아 낸다. 셋째는 타협이다. 다시 반등하기만 한다면 얼른 팔아서 손실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오겠다고 맹세한다. 투자 이전으로 돌아 가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넷째는 우울이다. 손실로 인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에너지가 없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단력이 없으며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 끝으로 수용 단계이다. 마침내 불가피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수용은 거의 감정이 결여돼 있고 체념으로 나타난다.
시카고 상업거래소 운영 위원과 집행 위원을 역임한 짐 폴은 선물 트레이더로 일하며 일찌감치 성공을 거뒀다가 잘못된 투자로 수익금 전부와 상당한 재산까지 추가로 잃으며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로스(Loss)-투자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심리’라는 책을 통해 자신이 얻은 값비싼 교훈을 제시했다. 실패를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반복되는 실패들을 기반 삼아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공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반복된 성공의 기반 위에 실패가 찾아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마스 에디슨은 대략 1만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필라멘트를 찾아내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다. 에디슨의 멘로파크 연구소가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된 날 어느 기자가 그에게 심경을 물었다. 에디슨은 “내일부터 다시 짓기 시작할 것”이라고 답했다. 에디슨이 성공한 이유는 실패나 성공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 실패나 손실은 자산 운용의 과정 중 하나이다. 지금의 실패나 손실이 투자 성공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죽음을 겪는 것과 같은 마음의 상실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