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링거줄에 약물흡착돼 약효 떨어져”…해묵은 문제에 식약처 대책은 ‘글쎄’

2024-12-21

환자에 대한 약물 투여과정에서 폴리염화비닐(PVC)·폴리우레탄(PU) 소재 수액세트(수액줄·링거줄)를 사용할 경우 약물흡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수십년째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2000년 초반 문제를 제기했고, 의료계에서는 2017년 연구결과를 내놓으며 이목을 끌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많이 사용되는 항암제 등에서도 흡착이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져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액세트에 약물이 흡착되면 환자에게 적정량의 약물이 투여되지 않아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정량 투여가 필수인 항암제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도 않고, 관련 연구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정부는 “흡착률이 달라 일반화하기 어렵다”며 “흡착 관련 연구를 확인해보겠다”는 입장만 전했다. 이에 수액세트 약물흡착과 관련한 포괄적인 연구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식약처 “수액세트 재질 따라 흡착률 달라”=11월1일 한양대 의대 연구팀은 수액세트 제조업체 DRB헬스케어와 함께 항암제 3종, 항생제 3종, 진정제 1종에 대한 PVC·PU·PO(폴리올리펜) 소재 수액세트 흡착 관련 연구결과를 내놨다. 2017년 연세대 의대에서 일부 약물의 수액세트 흡착문제가 제기됐는데, 이번에는 항암제를 비롯해 항생제·진정제 등에서도 연구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제기된 수액세트의 약물흡착 문제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수액세트 재질별로 흡착률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지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본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수액세트 약물흡착과 관련한 입장과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수액세트 재질(PVC·PU)에 따라 약물흡착 가능성은 있으나, 의약품의 약물성질(친수성·극성 등) 및 수액세트 재질별 조합에 따라 흡착률이 달라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답했다. 식약처가 수액세트의 약물흡착을 인지하고 있으나 대책 마련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현재 수액세트 흡착 문제로 검토되고 있는 사항은 없다”며 “(다만) 언론 보도된 한양대 연구팀 결과 관련 자료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양대 의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항암제 도세탁셀의 경우 PU 소재 수액세트는 PO에 비해 12배, 에토포사이드는 PVC가 PO에 비해 7배 가량 약물흡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장용우 한양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는 “면적 값(수치)이 높을수록 약물흡착이 많이 된다는 뜻으로, 1.0대이면 흡착이 미미한 수준”이라며 “예를 들어 도세탁셀은 PO에서 1.7, PU에서 20.4가 나왔는데, 이는 PO보다 PU에서 12배 정도 흡착이 잘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한 약물이 수액세트에 흡착되면 처방된 것보다 적은 양의 약물이 투여돼 치료효과가 반감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항암제의 경우 적정량의 약물이 투여되지 않으면 암의 전이와 재발 가능성이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 장용우 교수는 “약물이 덜 투여된다고 사람이 죽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약물 효과는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정량의 약물를 투여하기 위해 수많은 임상실험을 거치는데, 수액세트 흡착으로 적정용량이 들어가지 않고 흡착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년 전부터 제기된 문제…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수액세트 흡착 문제는 200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시민단체에 의해 PVC 소재 수액백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약물흡착 문제도 같이 거론됐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2007년 PVC 소재 수액백 사용이 금지됐고, 약물흡착 문제는 ‘어부지리’로 해결됐다. 문제는 수액세트다. 환경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 PVC 사용으로 문제가 일부 해소됐지만, 약물흡착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그러다 2017년 황성주·변호진 연세대 약대 교수가 니트로글리세린(혈관확장제)·사이클로스포린A(면역억제제)·타크로리무스(면역억제제) 등이 PVC·PU·PO 수액세트에 얼마나 흡착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그해 10월 식약처를 상대로 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문제가 제기됐고, 식약처는 대책을 다짐했다.

당시 류영진 식약처장은 “PVC 쓰면서 흡착이 많이 된다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사전에 주의를 붙인다”며 “앞으로 그 부분을 더 살펴서 적정하게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주의문구 표시 등 ‘땜질 처방’만 수년째=당시 식약처가 내놓은 몇가지 대책 중 하나는 문제가 된 약물(니트로글리세린·사이클로스포린A·타크로리무스)을 사용할 때 ‘주의하라’는 문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의약품 성분별로 흡착률이 모두 다르다”는 최근 식약처의 답변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문제가 된 3가지 약물 외에 다른 약물들의 흡착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만, 관련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주영 의원실이 식약처에 수액세트 흡착 관련 연구를 한 이력을 묻는 질문에 “2015년 수액세트 안전성 관련 연구 1건”이 전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주의 문구 표시가 실효성 있는 대책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강주섭 대한약리학회 회장은 “(주의 문구가) 경각심을 줄 수는 있겠지만 실효성은 없을 것 같다”며 “이미 병원 납품 업체들이 전부 PVC를 쓰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 교수도 “초기 대응은 일부 약물에 국한돼 전반적인 약물흡착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불충분했다”며 “의료 현장에서 약물 투여 때마다 흡착 여부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약물흡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흡착성 수액세트 사용을 권장하거나 의무화하는 등의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권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흡착률이 약물의 성질 등에 따라 다르다면서도 이에 대한 연구나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강주섭 회장은 “모든 약물도 아니고 일부 약물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했다. 연구를 통해 흡착되는 약물은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투여 용량에 변동이 있어도 문제가 없는 항생제는 놔두고 항암제 등 용량이 (환자 안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물은 PVC를 쓰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암환자들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암환자 2000여명이 가입된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의 김성주 회장은 “수액세트에 주의사항을 기재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수액백은 흡착이 문제고, 수액세트는 괜찮다는 것인가”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식약처가 환자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수액백과 동일한 기준으로 수액세트도 PVC 소재는 사용하지 말고 다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식약처는 수액세트 흡착과 관련해 ▲의료기기 세트 등의 사용시 주의사항 기재(2017년 12월) ▲약물흡착이 적은 수액세트 등 보험 적정화 요청(2018년 9월) ▲병원협회 등 의료기관 관련 유관단체에 약물흡착 안전성 서한 발송(2022년 11월) ▲약물흡착방지수액세트 품목 신설(2023년 6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고 설명했다.

◆연구 부족, 업계 고려 등으로 근본대책 못 내놔=수십년째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 주목하고 마는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연구 데이터 부족 ▲의료시스템의 관성 ▲규제의 한계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장 교수는 “수액세트 재질별로 다양한 약물에 대해 광범위한 흡착도를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또 PVC 수액세트는 오랜 기간 표준으로 사용돼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재질(PO)로의 전환에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데, 이러한 관성이 적극적인 대응을 지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당국이 의료 현장과 업계의 사정을 고려하느라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수액세트를 만드는 업체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섣불리 제도를 추진했다가 업계에 타격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수액세트 생산·수입업체는 71개 정도다. 이 중 약물흡착방지 수액세트를 제조하는 회사는 5곳에 불과하다. 생산량을 보면 소재별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2023년 기준 수액세트 생산·수입량은 2억1389만개에 이르는데, 이중 PVC가 90%, PU 0.6%, PO 1.4%, 기타 8.4% 등이다. 전체 시장의 대부분이 PVC 재질인 셈이다.

2007년 수액백의 재질은 바꾸도록 하면서도 수액세트는 그대로 둔 것이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도 “수액백을 만드는 회사는 대부분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설비와 원자재를 변경할 능력이 있다”며 “하지만 수액세트는 영세 업체들이 많고, 규모가 크더라도 1회성 소모품이다 보니 일괄적으로 계도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체계적인 연구 바탕으로 정책 재검토해야=일각에서는 약물흡착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7년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료기기위원회에서 수액세트에 주의사항 문구를 넣는 것을 논의할 당시의 회의록을 살펴보면, ‘약물흡착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도 엿볼 수 있다. 환자 임상에 따라 투여량을 조정하기 때문에 약물흡착 문제를 크게 볼 필요가 없으며, 애초에 약물 투여량이 PVC 수액세트를 기준으로 결정돼 PO 소재로 바꾸면 오히려 약물이 많이 투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 교수는 “환자의 임상을 보며 용량을 조정하는 것은 초기 치료 이후의 과정”이라며 “초기 투여 시 수액세트에 약물이 흡착돼 충분한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면, 이는 초기 치료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약물 투여량이 PVC 수액세트를 기준으로 결정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흡착량이 일정하지 않아 투여 시마다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에 약물 투여 후 예측 가능한 치료 반응을 방해하고, 약효가 일정하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의료계에서도 이견이 있는 만큼 수액세트 약물흡착 문제를 당국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 교수는 “정밀한 약물 투여가 필요한 항암제, 항생제, 희귀 의약품 등은 수액세트의 재질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식약처는) 다양한 약물을 대상으로 수액세트 재질별 약물 흡착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증 환자와 항암 치료 환자에게 비흡착성 수액세트 사용을 권고하거나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병탁 기자 pp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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