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빛깔도 곱고 모양도 예쁜데 주문량은 왜 적을까요? 정말 불황이 심하긴 한가봐요.”
설 대목인 17일 오전, 경기 농협안성농식품물류센터 2층 소포장·전처리 작업장. 위생복을 갖춰 입은 작업인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혼합과일선물세트 선별·포장 작업을 하던 도영안씨의 손도 바삐 움직였다. 상자 안에 한라봉이 더 예쁘게 보이는 각도를 찾아 과일을 이리저리 고쳐놓던 도씨 얼굴에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
설(29일)이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체감 경기가 바닥 수준이라는 여론이 높다. 특히 올 설에는 배를 제외하고는 사과·포도 등 주요 과일 시세가 전년 대비 낮고 품질도 양호하다. 맛 좋은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만 지갑을 활짝 여는 소비자를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게 시장 유통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농협안성센터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현장 곳곳엔 빨간색·갈색으로 제작된 선물용 포장상자가 10∼15개씩 겹쳐 쌓여 있었다. 임규 소포장팀 과장은 “2일 본격적인 작업을 개시한 이후 특별근무를 통해 ‘명작’ ‘뜨라네’ ‘저탄소’ 등 농협의 대표 과일선물세트를 상품화하느라 여념이 없다”면서도 “작업하는 선물세트 물량이 하루 평균 1500개로 지난해(1800∼2000개) 대비 10∼20% 줄었다”고 말했다.
김준학 물류지원팀장은 “전국 산지농협에서 소비지로 직접 배송하는 물량이 있어 이같은 수치가 전국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전국 농협 판매장에서 지난해보다 주문이 덜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비 양극화는 경기 불황을 보여주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지난해 설엔 과일선물세트 가운데 7만∼10만원대 제품(‘명작 혼합 4∼6호 세트’)이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 예약판매에선 5만∼6만원대 실속형 상품(‘뜨라네 혼합 1·2호 세트’) 선호도가 높았다. 사과·배·포도가 품목별로 한개·한송이씩 구성된 이른바 ‘샘플러 제품’ 판매도 늘었다. 이와 동시에 12만원대 이상 프리미엄급 고가 상품(‘명작 혼합 7·8호 세트’) 매출도 증가했다.
김 팀장은 “명절에 차례는 지내야 하고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으니 차례용 과일을 한개씩만 구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앞으로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내수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농촌진흥청 또한 20일 내놓은 ‘2025년 설 명절 농식품 소비 행태 변화 조사’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한 설 선물 구매금액대 중 3만~5만원대 선호도가 가장 높았고, 3만원 미만 금액대를 선물하겠다는 의향도 전년 대비 증가했다고 밝혔다.
꽁꽁 언 경기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선 설 대목 농산물 소비 촉진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경기 회복을 지원했다. 유통업체들도 경기에 걸맞은 선물세트 구색에 열을 올렸다. 농협은 배 생산 감소에 따른 가격 부담을 낮추고자 ‘뜨라네 혼합 2호’ 선물세트 구색을 종전 ‘배 6개, 사과 7개’에서 ‘배 4개, 사과 8개’로 변경했다.
현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이마에 묻은 땀방울을 닦아내던 임 과장은 그러나 이내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과 크기는 조금 작아도 당도·색택은 어느 설 명절 대목 못지않게 좋습니다. 고품질 우리 과일 믿고 구입하셔도 됩니다.”
안성=김인경 기자 wh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