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에 젖은 자갈은 밟힐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추석 연휴 막바지인 지난 10월 10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에는 가을비가 내렸다. 기와를 타고 흘러내린 빗방울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우산을 든 방문객들은 지붕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을 넘나들며 궁을 구경했다.
그중 절반 정도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보이는 명정전, 문정전에서부터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함양문을 지나 궐내각사 홍문관을 거쳐 창덕궁 밖으로 나올 때까지 못 해도 서른 벌이 넘는 색색의 한복을 볼 수 있었다.
K콘텐츠 덕분일까? 이제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의 모습도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단체로 한복을 맞춰 입고 온 외국인 관광객들은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줄지어 돌길을 걸었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가 빗소리에 섞여 흘러갔다. 비 오는 고궁의 풍경은 차분하기도, 경쾌하기도 했다. 가지런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함께 있는 궁궐처럼, 밝은색과 짙은 색이 어우러진 한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