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디지털화폐 프로젝트, 국가 재정·금융체계 혁신의 분수령

2025-09-02

2025년 8월 28일, 한국은행은 110조원 규모의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정책적 시범사업을 넘어 국가 재정 운영 체계와 금융 인프라 전반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내포한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활용해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본 사업은 '프로젝트 한강'의 2단계에 해당하며, 블록체인 기반 전자지갑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도입함으로써 재정 집행의 효율성, 투명성, 그리고 정책 효과성을 제고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대규모 국고보조금 집행 과정에서 CBDC를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데 있다. 기존의 현금 지급이나 바우처 방식은 사용처 관리가 제한적이고, 부정수급·중복수급 문제에 취약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반면 디지털화폐는 지급과 사용을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예산이 지정된 용도 외로 전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업 보조금은 지정된 농자재 구매나 시설 투자로만 사용되며, 교육 보조금은 학원비·교재비와 같은 특정 지출에 국한된다. 이러한 조건부 사용 제한은 기술적으로 자동화되며, 정부는 예산 집행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이는 재정정책의 집행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예산 운용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강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과거에는 보조금 집행 실태와 효과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고, 그 결과 정책 수정이나 보완 조치가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디지털화폐 기반의 지급 체계에서는 예산의 흐름이 실시간으로 파악되므로, 정책 집행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재정정책을 단순히 계획·집행·사후평가라는 선형적 과정으로 운영하는 데서 벗어나, 집행과 동시에 점검과 수정이 가능한 순환적·적응적 구조로 전환시킨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보다 정밀하게 예산을 운용할 수 있으며, 국민은 정부의 지원이 정확히 필요한 곳에 도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신뢰의 축적은 재정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높이고, 정부와 사회 간의 협력적 관계를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CBDC 도입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재정 거버넌스의 혁신이자 국민적 신뢰 회복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CBDC에 대한 기대효과만큼이나 준비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크다. 첫째, 기술적 안정성이다. 수십조원 규모의 자금이 디지털 형태로 이동하는 만큼, 시스템의 보안성과 확장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분산원장 기술, 암호화 알고리즘, 전자지갑의 안전성 모두 국제 최고 수준을 충족해야 하며, 사이버 위협 대응 체계 역시 전방위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둘째, 법·제도적 정비다. CBDC의 법적 지위, 지급 및 사용의 규율 체계, 개인정보 보호 원칙, 금융기관의 역할 범위 등 핵심 법제도가 명확히 확립되어야 한다. 법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시장 혼란과 제도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사회적 수용성이다.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는 국민의 신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특히 사용자의 편의성을 보장하는 지갑 시스템, 직관적이고 안정적인 사용자 경험(UX), 그리고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령층 및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 역시 필수적이다. 넷째, 민관 협력 구조 확립이다. 은행을 비롯한 민간 금융기관은 단순한 보조금 지급 창구가 아니라 CBDC 생태계 구축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권은 서비스 혁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 주력하고, 정부는 민간이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재정적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

110조원 규모의 디지털화폐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이 아니라 국가 재정 운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정책 설계와 집행에서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비전과 신뢰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첫째, 신뢰 기반 조성이다. 기술적 안정성과 제도적 명확성을 바탕으로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데이터 활용의 균형이다. 디지털화폐 기반 보조금 데이터는 정책 설계에 귀중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민감한 생활 정보가 포함된다. 정부는 공익적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엄격한 균형을 지켜야 한다. 셋째, 국제 연계 전략이다. 디지털화폐는 국경을 초월한 거래 가능성을 내포하므로, 국제 공조 및 표준화 논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형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글로벌 표준화 과정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외교적·기술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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