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산 유통의 핵심 고리인 도축장 내 고령화·인력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축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자 대부분이 60대인 데다 젊은층 유입도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도축업체가 외국인을 쉽게 고용하도록 규제를 풀고, 인력을 대체할 로봇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늙어가는 도축장…20대 유입 0명=“60대가 주축이에요.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 소·돼지는 누가 잡을까 싶다니깐요.”
최근 찾은 전남 나주의 한 도축장에선 15명 남짓한 직원이 도축한 돼지를 부위별로 분할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도축장 인력관리업체 대표 A씨는 “우리만 아니라 전국 도축장이 고령화·인력난에 시달린다”며 “있는 직원마저 그만둔다는 소릴 할까봐 오히려 사장이 눈치를 본다”고 하소연했다.
해당 도축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24명. 이 가운데 60대가 13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50대는 7명, 40대는 3명, 30대는 1명이며 20대는 단 한명도 없다.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직원수도 줄어드는 전형적인 ‘역피라미드’ 구조다.
다른 도축장 사정도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남 함평의 한 도축장 관계자는 “발골 자체가 고된 노동이다보니 이른바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업종으로 통한다”며 “한번은 젊은 친구가 일하겠다고 왔는데 너무 힘들다며 오전만 일하고 도망가버렸다”고 귀띔했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니 현장에선 ‘외국인 불법 고용’도 만연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축장 대표는 “워낙 인력난이 심각해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을 읍소하며 데려오기도 한다”면서 “도축업체간 경쟁도 치열해 베트남 출신 외국인 근로자 기준 월 300만원을 줘야 겨우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말까지 돈다”고 전했다.
◆외국인 전문인력 고용하도록 규제 풀어야=도축업계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외국인 전문인력을 고용하도록 비자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숙련기능인력(E-7)’ 비자 허용이 대표적이다. E-7 비자는 전문지식·기술·기능을 가진 외국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정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비자다. 현행법상 E-7 비자 소지자는 도축장에서 일할 수 없는데 이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한국축산물처리협회 관계자는 “발골은 숙련된 손기술이 필요해 편의점 파트타이머를 채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가령 외국 현지에서 도축기술을 연마한 외국인에겐 E-7 비자를 주고 도축장에서 일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전문취업(E-9)’ 비자에 대한 체류기간을 늘려달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관계자는 “E-9 비자를 획득한 외국인이 도축장에서 일할 때 기존 체류기간 4년10개월을 10년까지 연장해줄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E-9 비자 소지자가 다른 산업분야로 유출되지 않게 사업장 변경 금지 조건을 달아 인력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축장 내 로봇 도입 움직임도 활발하다. 도축 자동화로봇 개발업체인 ‘로보스’의 박재현 대표는 “도축장 내 축산물을 포장할 때 상당한 업무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올해는 포장 과정, 내년에는 발골 과정에 집중해 진일보한 로봇기술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나주=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