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F. 월터 UC샌디에이고대 교수(61)는 26일 중앙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제에 대해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집중돼 민주적 규범을 신경 쓰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에게 취약한 시스템”이라고 못박으면서다. 월터 교수는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습격 등 전세계 수백여 건의 정치 불안정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담은 책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How civil wars start)』(2022)로 명성을 얻은 정치학자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놓고 찬반이 갈리면서 ‘심리적 내전’ 상태라는 진단이 나오면서다. 두달 전엔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벌어졌고,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물리적 내전이 예고되는 상황”(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란 말까지 나왔다. 월터 교수의 책을 인용하며 한국이 내전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아노크라시(anocracy)’ 문턱에 온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러나 정작 월터 교수는 “한국이 (민주주의와 독재의 중간에 자리한) 아노크라시는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퍼지는 위기감과 달리 한국의 민주주의를 낙관하는 셈이다.

“미 선거선 내전 일으킬 가능성 높은 이들이 승리”
한국이 아노크라시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아노크라시인지 판단할 때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법의 지배가 강력한가를 본다. 한국의 민주적 기관들은 여전히 비교적 강력해 보인다. 그런 기관이 강하지 않았다면 탄핵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 건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2년 출간한 책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미국을 “내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온 지금은 어떻게 보나.
“단기적으로 내전 조짐은 없다. 내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들이 선거에서 승리해서다. 과거 정치·경제 권력에서 지배적 위치를 잃고 있다고 느끼는 백인 기독교 남성이 폭력에 많이 가담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승리해 현재는 싸울 동기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제되는 그룹은 싸울 동기를 갖게 될 거다.”

“독재자 되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배워”
한국 일부 우파는 과거 트럼프 지지자들이 들었던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표 도둑질을 멈춰라)’ 피켓을 든다. 한국 우파 등 여러 국가 우파가 미국 영향을 받는 경향, 어떻게 보나.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극우 단체가 부상하고 선거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는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독재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배운다는 점이다. 둘째는 소셜 미디어의 부상이다. 인터넷에서 엄청난 청중을 확보할 수 있어 선거에 관한 거짓말을 퍼뜨릴 수 있고, 기술 기업들이 만든 알고리즘은 극단적인 내용을 퍼뜨린다.”
내전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쉬운 방법은 소셜 미디어를 규제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규제하는 방식을 추천한다. 분노, 증오, 공포를 유발하는 발언을 알고리즘이 선호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선 기존의 견제와 균형으로는 민주주의를 구할 수 없음을 목격하고 있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큰 기관은 의회인데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을 제약하려 하지 않는다. 법원은 행정부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시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존 견제로는 민주주의 못 구해…알고리즘 규제해야”
한국에선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논의되는데.
“대통령제에 비해 의회제는 심각한 정치적 폭력이나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민주주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젠 그렇지 않다. 1780년대 버전의 낡은 민주주의다. 노예 소유주들 타협으로 만들어진 비민주적인 상원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선거인단이 있다. 교통 수단이 진화하듯 민주주의도 진화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진화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이 없다면 지나치게 경직돼 결국 망가질 것이다.”

☞ 바버라 F. 월터(Barbara F. Walter)는
UC샌디에이고대의 글로벌 정책·전략대학 국제 관계 담당 특훈 교수이자 내전, 정치적 폭력, 테러리즘 분야 전문가다.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 올린 전략연구소와 컬럼비아대 전쟁과 평화 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미국 외교협회의 종신회원으로, 세계은행과 유엔,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에 조언하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