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접종 이론’의 불모지

2025-03-30

얼마 전 예방주사를 맞고 후유증에 시달렸다. 며칠 심신이 쑤시고 불편했다. 예방주사는 인위적으로 만든 병원체를 직접 신체에 투입하여 그 병원체가 일으키는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배양하는 백신 처방이다. 나중에 강한 병원체가 인체에 침투하여 일으킬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려는 목적에서다.

흥미롭게도 예방의학의 백신 항체 역학이 설득 효과를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연결되어 ‘접종 이론’(Inoculation theory)으로 계발되었다.

1964년 예일대학의 사회심리학자 맥과이어(McGuire) 교수에 의해 메시지가 담고 있는 주장에 저항하는 방안으로 이론화된 것이다. 즉, 약한 강도의 주장을 담고 있는 메시지를 미리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주장에 반박할 면역능력을 기른다. 배양된 반박 능력은 아주 강한 강도의 주장을 담은 메시지를 접하게 될 때 현혹되거나 설득당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접종 이론을 떠올린 것은 각종 현안을 놓고 오가는 정치권의 말들이 너무 험악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상목 장관이 대통령 대행의 대행을 할 때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 ‘직무유기 현행범’으로 호칭하며 국민을 포함하여 누구든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면서 ‘몸조심하라’고 했다. 대행의 개인 안위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지난 24일에는 헌재에 빠른 선고를 압박하며 “심리적 내전을 넘어서 물리적 내전이 예고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질서를 부정하는 섬뜩한 주장이었다. 어느 여당 의원은 방탄복을 착용하고 다니는 민주당 대표를 향해 앞으로 두 겹 세 겹 방탄복을 입고 다녀야 할 것이라고 폭언했다.

세계적인 학자인 고 맥과이어 교수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정치권의 망국적인 언어폭력으로부터 국민의 피해와 공포를 줄이는 데 접종 이론의 활용은 어려워 보인다. 당파적 이익에만 매몰된 무책임한 말의 전염병이 창궐한 지 오래여서 풍토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말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인 로고스(논증적 요소), 파토스(공감적 요소), 에토스(신뢰적 요소) 모두에서 자격 미달의 비상식적 어처구니없는 말이 범람하며 우리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 진짜인 척하는 ‘가짜 말’ 때문에 이미 힘든 세상에 정치권 사람들이 뱉어내는 가짜로 믿어질 만큼 극한의 ‘진짜 말 폭언’을 보는 건 비극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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