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은 자연산 인삼이다. ‘인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것은 보통 밭에서 재배한 인삼을 말하며, 야생에서 채취한 인삼은 ‘자연산 인삼’이라 하지 않고 흔히 ‘산삼’이라고 부른다. 산삼은 재배 인삼과는 다른 독특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산삼의 유전자는 인삼과 동일한 수준이다. 자연산 넙치와 양식 넙치 사이에 맛과 가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물학적 차이는 없듯이 산삼과 재배 인삼은 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같은 종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산삼은 재배 인삼이 도달하지 못하는 탁월한 약효를 낼 수 있다고 믿으며, 기꺼이 비싼 값을 치르고 산삼을 구입한다. 과연 재배 인삼에 비해 산삼만이 갖는 특별한 효과가 있을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있다. 산삼은 재배 인삼에서는 검출되지 않는 진세노사이드 Rg3·Rh2 등 고유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물질들은 재배 인삼에 함유된 다른 진세노사이드에 비해 항암, 면역 증강 활성이 강력하고 생체이용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배 인삼과 산삼이 동일한 종이라면, 산삼만이 특이 성분을 함유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진세노사이드와 같이 식물이 만드는 생리활성 물질을 흔히 ‘식물 화학물질(파이토케미컬)’이라 부른다. 식물 화학물질은 식물이 병균, 곤충, 초식동물, 자외선, 가뭄 등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에 대응해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만드는 화합물을 우리 인간은 유용한 약물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폴리페놀 성분은 항균 작용으로 식물이 병균에 대한 저항성을 갖도록 해주고, 알칼로이드 성분은 쓰디쓴 맛으로 초식동물이 선호하지 않게 한다.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자외선으로 인한 식물세포 손상을 경감하며, 진세노사이드와 같은 테르페노이드 성분은 가뭄에도 식물세포가 버틸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식물 화학물질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므로, 일정한 수준의 스트레스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생산이 줄어든다. 따라서 천적을 제거하고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하는 식으로 스트레스 없는 환경에서 키운 식물에는 식물 화학물질이 별로 들어있지 않다. 예컨대 바닷가 노지에서 기른 시금치는 염분과 저온 스트레스에 저항하기 위해 당분을 많이 합성·비축하는 반면, 내륙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시금치는 당분이 덜 필요하므로 적게 저장한다. 그래서 바닷가 시금치가 훨씬 달고 맛있는 것이다.
약용식물도 이와 마찬가지로, 적정한 스트레스를 가해서 조금은 ‘못 살게 괴롭혀야’ 약효가 높아진다. 반대로 온실 속 화초로 애지중지하면 체중은 늘어나지만 약효는 떨어진다. 생존 위험에 노출된 척박한 야생에서 자란 자연산 약초의 식물 화학물질 함량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하며, 같은 재배품이라도 비료와 농약 없이 기른 약초의 효능이 더 낫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서는 유기농·무농약으로 친환경 생산한 한약재를 ‘우수 한약’으로 선정해 보급하고 있다.
그런데 식물에 무작정 스트레스를 주기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지나친 스트레스는 식물 생장을 저해하거나 심하면 죽게 만들 수 있고, 일관성 없는 스트레스는 일관성 없는 약효로 이어지게 된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 등 일차원적인 지표보다는 생산성과 유효 성분 함량의 적절한 균형을 지표로 삼는 재배·생산 기술이 더욱 연구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