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실록, ‘다시 쓰는 전통’ 주제 포럼…육경희 대표 “전통 순대 재해석해 계승”
올해로 15년째 순대 연구 매진, 전통순대 원형 복원하고 해외 순대 조리법 접목
전통순대 ‘문화’로 만들어 지속가능성 확보…"사명감으로 순대 새 역사 쓰겠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우리나라 순대가 공장제 당면순대로 획일화되는 모습에 순대의 다양성을 많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조선시대 순대는 소, 돼지, 닭, 꿩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유럽 소시지와도 닮은 모습인데, 이런 전통 순대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지속가능한 전통으로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육경희 순대실록 대표는 11일 순대실록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순대실록은 ‘다시 쓰는 전통’을 주제로 포럼을 열고 ‘순대’를 통해 전통의 본질, 시대적 재해석, 지속가능성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육 대표는 올해로 15년째 순대를 연구하고 있다. ‘누구나 좋아하는 순대’를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한 순대 연구는 ‘순대의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됐다. 조선시대 조리서인 ‘시의전서’를 바탕으로 전통순대를 복원하고, 우리나라의 모든 순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전국을 돌며 순대 조리법을 배웠다. 2017년부터는 해외의 순대로 범위를 넓히며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순대를 연구했고, ‘순대실록’을 집필했다.
육 대표는 “어린 시절 직접 경험했던 다양한 순대들을 미래 세대도 즐겨 먹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어떻게 실현할까 고민하다 순대에도 스토리텔링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음식도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고, 문화는 결국 이야기와 함께 파급되고 지속된다. 이야기를 담은 전통순대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다”고 말했다.
그는 순대실록 플래그십 스토어도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공간이 아닌, 순대를 주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우리나라 순대가 가진 오랜 역사와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박물관을 콘셉트로 삼고, 전통적 요소를 내재화한 인테리어로 순대를 문화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설계했다. 플래그십 스토어 개막을 기념해 연 이번 포럼도 단순 개막식이 아닌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쓰고 미래로 연결하는 시도’로 기획했다.
육 대표는 순대실록을 전통 기록과 맥락을 이해하고 미래로 이어가기 위한 플랫폼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먼저 우리나라 순대의 ‘뿌리’를 찾아 그 원형을 복원하고 가치를 기록하며, 이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순대를 개발한다. 나아가 소비자와 소통을 통해 전통을 담은 순대를 ‘살아있는 문화’로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육 대표는 “프랑스 미슐랭 레스토랑에는 피순대인 부댕 누아르(Boudin Noir)를 선지만 사용해 젤리처럼 만든 요리가 있고, 영국 레스토랑에서는 순대의 일종인 해기스(Haggis)의 재료를 해체해 한입거리로 만든 메뉴가 있다”면서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순대를 새롭게 이야기할까 고민했고, 전통순대 옛 모양 그대로 도전해보되 현대인과 젊은층 입맛에 맞게끔 내용물을 조금씩 바꿔보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순대’를 선보이기 위해 육 대표는 ‘농정회요’ ‘주방문’ ‘증보산림경제’ 등 조선시대 조리서 기록을 토대로 전통 순대를 복원하고, 이를 현대적 조리법으로 재해석했다. 소피순대인 ‘팽우육법’은 1600년대 순대를 기반으로 젊은층 입맛을 겨냥해 잣과 건포도, 돼지껍데기를 더했다. 달달한 맛을 가미해 소시지를 경험하는 듯한 맛을 구현했다. 소고기 순대 ‘우장중방’은 1800년대 순대에 시래기, 고추, 당근을 추가했다. 육 대표가 독일에서 선진화된 소시지 제조 기법을 직접 배워 이를 우리 순대에 적용했다. ‘순대스테이크’는 흑미, 견과류, 서리태, 파프리카 등 23가지 재료를 섞어 스테이크 형태로 순대를 재해석했다.
육 대표는 “신선한 재료, 건강한 유통으로 맛있는 순대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순대를 시작했지만, ‘순대에 미친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고 ‘왜 그렇게까지 순대에 목숨을 거느냐’는 얘기도 들었다”면서 “순대는 한마디로 나의 ‘운명’이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명감을 갖고 순대에 매진하게 됐다. 이제 ‘순대 전문가’란 평가를 받게 된 만큼 이에 부끄럽지 않도록 순대 역사를 새롭게 써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