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게 무슨 일? 비상계엄이라니! 옆지기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아픔의 기억이 되살아 난 듯한 놀란 표정과 외마디소리. 설마 가짜뉴스겠지, 라고 대꾸했지만 난 얼른 거실로 나가 뉴스를 보았다. 경찰과 군인들에 둘러싸인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어느새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총을 든 군인들과 밀고 당기며 대치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비상계엄 해제가 된 후에도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산선원서 가졌던 시 낭송 모임
종교 차이 넘어선 상생·통합 지향
종교의 중심 가르침 ‘종지’에 주목
인간 대한 희망 유지하게 하는 힘
밤새 뜬눈으로 뒤척이는 동안 검정 고무신이 자꾸 어른거렸다. 전두환 군부독재의 서슬이 시퍼럴 때 나는 한 기독교 잡지를 편집하고 있었는데, 반정부적인 글을 걸러내지 못하고(그땐 언론들이 알아서 자체 검열을 했다) 잡지에 게재했다는 혐의로 정보기관에 붙잡혀갔다. 소위 필화(筆禍) 사건. 당시엔 흔한 일이었으나 나로선 처음 겪었던 일. 남산 밑에 있는 정보기관. 위압적인 기관원들은 나에게 단추 없는 군복과 검정 고무신을 신게 했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가물가물하지만, 내 기억의 저장고 속에 있는 검정 고무신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평생 글밥을 먹어왔는데, 그때 나는 언어가 상생과 소통의 아름다운 ‘금실’(한강)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매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런 아픔을 겪고 난 후 내가 쓰는 글은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내 사유의 뿌리는 종교에 닿아 있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외피인 정치사회적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게 되었던 것.
지난 성탄절을 앞두고 특별한 시 낭송 모임이 있었다. 서울 북악산 자락의 무산선원(霧山禪院)이란 곳에서 열린 이 행사는 시조 시인이었던 설악 무산 스님(조오현·1932~2018)의 유지에 따른 것. 불교 선원에서 진행된 행사지만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상생과 통합을 지향하는 뜻깊은 시간. 시 낭송에 초대받은 후 계엄 사태로 인해 우울하고 뒤숭숭했던 마음도 다소 가라앉았다.
몹시 춥고 궂은 날씨였지만, 나 역시 스님, 신부, 수녀님들과 시 낭송을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렸다. 이전에도 시 낭송은 많이 했지만 다른 종교인들과 어우러진 시 낭송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날 무산선원을 가고 오는 내내 무산 조오현 스님의 다정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그분이 회주로 계시던 내설악의 백담사. 당시 스님은 ‘설악’이란 소책자를 간행하고 있었는데, 난 그 책자에 ‘연꽃과 십자가’란 시를 게재했다. 기독교 목사였지만 나는 젊을 때부터 종교 간의 갈등과 불화를 극복하는 일을 생의 과제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그 시를 쓰게 된 것은 당시 생존해 계시던 우리나라 종교계의 어른,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성탄절 무렵에 만나 진리의 법을 나누던 다정하고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분의 만남을 어울림이라 표현한 것은 그것이 종교 간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늦은 깨달음이라도 깨달음은 아름답네/자기보다 크고 둥근 원에/눈동자를 밀어넣고 보면/연꽃은 눈흘김을 모른다는 것,/십자가는 헐뜯음을 모른다는 것,/연꽃보다 십자가보다 크신 분 앞에서는/연꽃과 십자가는 둘이 아니라는 것,/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것…”(졸시, ‘연꽃과 십자가’ 부분)
연꽃과 십자가라는 상징에 기대어 종교가 화합하고 공존해야 할 원리에 대해 쓴 시.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 배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갈등과 불화의 현실을 마주칠 때 나는 붓다나 예수의 원초적인 가르침, 종지(宗旨)로 눈길을 돌린다. 여기서 종지란 어떤 종교의 중심이 되는 가르침을 뜻한다.
하여간 내가 종지로 시선을 돌리는 이유는 그것이 ‘연꽃보다 십자가보다 크신 분’을 마주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 크신 분 앞에 마주 서면 ‘연꽃과 십자가는 둘이 아니라는 것,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나 붓다의 종지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기적 욕망과 편견을 가지고 다른 종교·종교인을 판단하는 우리 자신의 왜소한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무력이나 강압으로 민주적 언로(言路)가 막힐 뻔했던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붙들 수 있는 긍정의 힘을 북돋워 주기 때문이다.
고진하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