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으레 새로운 결심으로 책을 펼친다. 하루에 한 쪽을 읽으면 된다는 ‘365’ 류의 책은 단골 손님이다. 올해 잡은 책은 『하루 라틴어 공부』로, 대학 때 결심했으나 뒷전으로 미뤘던 라틴어 공부를 교양 수준에서나마 실천해보겠다는 속셈이다. 1월 1일의 ‘두 얼굴의 야누스 Ianus Bifrons’를 시작으로 보름이 조금 넘게 읽었다.
원고를 쓰고 있는 1월 18일의 라틴어 문구는 ‘lex rex’이다. 이 단순한 여섯 글자짜리 문구는 광장에 나부끼는 깃발의 대열 중 하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rex’는 왕, ‘lex’는 법이다. “법이 왕이다”라는 뜻이다. 이 문구는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새뮤얼 러더퍼드가 17세기에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러더퍼드는 군주의 권력도 사회 계약이므로 법의 제한으로 받아야 한다고 썼다고 한다. 왕이 왕이 아니라 법이 왕이라는 말인데, 그래서인지 영국 왕실이 화가 나서 이 책을 불태웠다고 한다. 왕이 사라진 지 오래이고 헌법의 제1조 1항으로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대통령이 법 위에 설 수 없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그분들을 17세기로 돌려보내 드려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한편에는 헌법을 위반하고 내란의 혐의를 받는 대통령을 체포하는 일을 두고 법치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하는 ‘무늬만 법치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경찰과 검찰과 법원의 결정을 모두 부정하고도 되레 국민에게 ‘불법’ 딱지를 붙이지만, 지켜보는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누가 정말 ‘불법’인지, 누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구는지.
내일의 문구를 슬쩍 펼쳐본다. 내일의 문구는 ‘vox populi vox Dei’이다. “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 대부분의 민중은 12월 4일부터 명확한 요구를 하고 있다. 이 요구를 신의 소리처럼 듣지 않는다면, 글쎄, 민중은 그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