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경봉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금융혁신의 또 다른 얼굴
기업의 자금조달 방식은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다. 과거에는 은행 차입과 유상증자가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 복합금융상품이 활발히 활용된다. 투자자에게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기업에는 재무개선 효과를 제공하는 ‘혁신적 기법’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세회피, 지배구조 장악, 재무위험 은폐라는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낳는다.
CB‧BW‧RCPS의 이중성
CB와 BW는 채권성과 주식성을 동시에 가진다. CB는 발행 시 이자비용을 손금 처리해 세금을 줄이고, 전환 시 부채를 자본으로 바꾸어 재무구조를 개선한다. 투자자는 안정적 수익과 주가 상승 이익을 기대한다. BW는 이자 수익과 함께 유리한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부여하여, 기업은 이자비용 절감과 지분 확충 효과를 얻는다.
RCPS는 배당 우선권과 전환‧상환권을 가진 상품으로,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면 단기적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투자자는 배당과 지분참여 기회를 동시에 확보한다. CB‧BW와 결합될 경우 투자자는 ‘채권‧배당‧지분참여‧옵션’이라는 다층적 안전판을 갖게 된다.
결국 이러한 상품들은 채권과 주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적 성격을 띠며, 조건이 특수관계인에게 유리하게 설계되면 증여세 과세나 부당행위계산 부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패키지 거래의 효과와 사례
CB‧BW‧RCPS가 단독으로도 문제 소지가 있지만, 패키지로 묶일 때 그 파급효과는 더 크다. 발행 초기 이자비용 손금산입으로 세금을 줄이고, 이후 전환‧신주인수권 행사로 과세시점을 늦춘다.(조세측면) 특수관계인에게 유리한 조건 발행은 지분 희석을 통한 경영권 장악 수단이 된다.(지배구조 측면) 단기적으로는 자본 확충 효과가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분 왜곡과 주주 불신을 초래한다.(재무 측면) 실제 사례로 대기업은 경영권 분쟁 시 저가 CB 발행을 통해 오너 일가를 방어했고, 벤처기업은 투자자에게 RCPS를 발행해 배당을 보장하며 IPO 차익을 제공했다.
과세당국의 입장
국내 세법은 발행‧전환 단계에서는 과세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유 단계에서는 CB‧BW 이자, RCPS 배당, 상환 초과금이 과세되고, 양도 단계에서는 전환 후 주식 매각 차익이 과세된다.
과세당국이 특히 문제 삼는 것은 특수관계인 대상 저가발행이다. 시가보다 낮은 전환가액이나 행사가격은 사실상 이익을 무상 이전한 것으로 보아 「상속세 및 증여세법」제41조의2, 제45조의3에 따라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 또한 「법인세법」 제52조에 따라 부당행위계산 부인을 적용한다. 과세당국은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해 배당‧이자‧ 양도차익 중 어떤 성격이 강한지를 판정해 과세한다.
국제거래와 국내거래의 닮은 꼴
국제거래의 하이브리드 금융상품은 한 나라에서는 채권, 다른 나라에서는 주식으로 취급되어 이중 비과세를 낳는다. OECD BEPS 프로젝트가 이를 ‘하이브리드 불일치(hybrid mismatch)’로 규정한 이유다. 국내 CB‧BW‧RCPS 패키지 거래도 마찬가지로 회계와 세법이 엇갈리는 틈을 활용해 세금을 줄이고 과세를 지연한다.
제도와 감독의 과제
세법은 채권과 주식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회계기준은 복합상품을 부채와 자본으로 분리해 인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유리한 효과를 노리고 구조화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저가 CB‧BW 발행을 점검하며 불공정거래에 제재를 가하고 있고, 금융위원회는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RCPS‧BW를 허용하면서도 공시와 회계지침을 보완하고 있다.
국내 패키지 거래도 국제거래의 하이브리드 상품처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금융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래가 소수의 이익만 키우지 않도록 정교한 제도와 감독이 시급하다. 특히 최근 자본시장 상장폐지 심사에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여부가 직접적인 상장폐지 사유는 아니지만, 실질심사에서 중요한 고려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무분별한 CB‧BW 발행은 재무건전성 악화와 소수주주 피해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패키지 거래 문제는 단순히 세법적 과세 이슈에 그치지 않고, 상장사 신뢰와 시장 질서 유지라는 더 큰 틀과도 연결된다.

[프로필] 안경봉 국민대 명예 교수
•(현)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현)금융조세포럼 수석부회장
•(전)한국국제조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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