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해서 위험요인 방치하면 실형 선고" 울산지역 중대재해 판결문 분석과 진단 토론회

2025-10-21

[울산저널]이종호 기자= 21일 오전 10시 30분 민주노총 울산본부 2층 교육장에서 ‘울산지역 중대재해 판결문 분석과 진단’ 토론회가 열렸다.

김형기 노무사는 최근 울산지방법원에서 선고된 4건의 중대재해처벌법 판결문을 요약하고, 반복해서 위험요인을 방치하는 행위에 대해 법원이 무겁게 판단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이 대표이사 처벌을 피하려고 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안전보건 담당 임원(CSO)를 선임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의 책임 주체로 판단하는 경향이 확인됐고, 재해자가 하청노동자인 경우 원청 대표에게 안전 예산, 관리체계, 위험요인 개선 등 포괄적 의무를 묻는 판결 흐름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기업은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기소가 지연되고 있고, 위험을 방지할 시스템을 마련할 사업주의 의무가 있는데도 작업자 잘못, 피해자 실수를 이유로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을 감경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김형기 노무사는 “실질적인 위험성 평가나 노동자 출입 통제를 위한 인력과 시설비 마련 등 실효성 있는 관리체계 구축 노력이 입증되지 않은 경우조차 동료 노동자의 책임, 피해자 과실, 예외적‧불가항력 요소, 사용자 예측 불가 등을 이유로 처벌을 감경했다”며 “이 판결은 중대재해 예방과 실효성 중심 엄벌을 원칙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지난 8월까지 이 법 위반으로 기소된 121건 중 1심 판결이 나온 것은 56명이고, 이 가운데 50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평균 형량은 ‘징역 1년, 벌금 1억 원’이었다.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5건이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 노무사는 “울산지방법원 4건의 판결은 전체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과 처벌 규정에 부합하는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결론 내렸다.

1999~2022년 울산 산재 사망자 1447명

현미향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울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실을 통해 노동부로부터 받은 1999~2022년 울산지역 산재 사망자와 산업재해 발생 실태, 2022년 이후 울산지역 중대재해 현황을 분석했다.

1999년부터 2022년까지 울산지역 산재 사망자는 사고 사망 921명, 질병 사망 526명 등 1447명이었다. 공업센터로 지정된 1962년부터 1998년까지 산재 사망자 수를 정확히 확인하는 작업은 과제로 남겼다. 1999~2022년 울산지역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사고 6만2926명, 질병 1만3846명 등 7만6772명이었다.

2023년 기준 울산의 사업장은 5만9161곳, 노동자는 51만916명이었고, 산재 사망자는 62명, 재해자는 5355명이었다. 사망만인율 1.21로 전국 사망만인율 0.98보다 높고, 재해율도 1/05로 전국 재해율 0.66보다 월등히 높았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울산운동본부가 집계한 2022년 이후 울산지역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2022년 18명, 2023년 13명, 2024년 23명, 2025년 9월 말까지 27명이었다. 지역별 발생 건수는 울주군이 37건으로 가장 많고, 남구 20건, 동구 12건, 북구 8건, 중구 1건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39건, 건설업 31건, 기타 7건 순이었고, 2025년에는 건설업 12건, 제조업 11건으로 건설업 중대재해가 크게 늘었다.

재해 유형별로는 추락 26건, 폭발/화재 11건, 끼임 8건, 깔림 8건, 맞음 7건, 부딪힘 5건, 질식 4건, 익사 3건, 기타 5건 발생했다. 현미향 집행위원장은 “2025년은 폭발/화재, 끼임, 깔림, 부딪힘, 맞음 등 재해 유형별로 다양하게 발생했고, 다른 해와 달리 유해물질 노출, 유해물질 중독, 열사병, 벌 쏘임 등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울산운동본부가 집계한 중대재해와 고용노동부가 발표하는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은 차이가 있다. 현미향 집행위원장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교통사고, 비사망 재해, 벌 쏘임, 본부 제외, 선원법 적용 등을 이유로 2025년 중대재해 사고에서 제외한 5건은 모두 중대재해에 해당된다며 노동부의 중대재해 집계가 실제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울산지역 산재 사망자는 2018년을 기준으로 사고 사망자보다 질병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현미향 집행위원장은 “현재 중대재해처벌법과 사회적 흐름은 사고 사망에 집중돼 있다”면서 “질병 사망에 대한 공론화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안전사회로의 전환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여전히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의 경영방침은 공고하다”며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실질적으로 가동되려면 안전보건 경영방침을 분명히 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요구해왔던 원하청 산보위 운영처럼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비정규직 사용 제한, 5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원청‧국가‧지자체 차원의 실질적 지원, 중대재해 희생자 기억과 추모 사업도 요구했다.

'위험의 외주화' 이어 '위험의 이주화'도

김병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 부장은 “작업 전 위험성 평가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체크리스트에 서명만 하는 수준으로 실제 위험은 여전히 방치되고 있고,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며 “서류와 보고서는 늘어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장 중심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실현하기 위해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노동자의 참여 속에 점검과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진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는 보고서가 아니라 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서 퇴근할 수 있는 현장에서 증명된다”고 말했다.

오세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선산업 원청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고, 원청이 책임져야 할 안전은 하청업체로, 하청업체의 물량팀으로 내려가면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며 “위험의 외주화가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2024년 현대중공업, 현대미포 하청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3.1%가 공상 처리하고, 19.7%가 자비로 치료했으며, 21.3%만 산재로 처리했다. 2014년부터 2025년까지 현대중공업에서 정규직 12명, 하청노동자 30명이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하청노동자 사망자가 정규직 사망자의 2.5배다. 2024년 조선산업 중대재해 사망자 21명 중 18명이 하청노동자다. 전체 사망자의 86%에 이르는 수치다.

위험의 이주화도 지적했다. 오세일 비상대책위원장은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과 대화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안전교육도 자국 언어로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아직 이주노동자들은 숙련노동자가 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위험한 작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지 않을 수 있지만 숙련노동자가 되는 만큼 위험한 작업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많아질 것이고, 그럴수록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발생률은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세일 비상대책위원장은 “하청노동자들이 단결해 안전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며 “노조로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금속노조가 함께 단결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고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울산운동본부는 21일부터 28일까지 울산시민과 함께하는 중대재해 희생자 기억사업 주간으로 정하고, 이날 토론회에 이어 23일 오후 6시 울산대공원 산재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위령제와 추모 문화제를 연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2층에서 28일까지 울산지역 노동안전보건투쟁 역사 전시회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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