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트럼프에 선물 푼 日, 준비 안 된 韓

2025-02-0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상대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무역적자 해소와 안보책임 강화를 요구했다. 그러자 이시바 총리는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주일미군 방위비를 트럼프 1기때보다 두 배 증액하기로 했다. 또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늘리고 미국 현지 투자금액도 1조달러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일본은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 방위 △북한의 핵·미사일 억제 등을 얻어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도 투자 형식으로 진행키로 했다. 돈(경제)을 주고 안전(안보)를 보장받은 셈이다.

이번 결과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의 대표적인 동맹국이지만, 대미 무역 흑자국이자 미군에 안보를 의지하는 나라다. 특히 전세계에서 유이하게 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정을 체결하는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줄곧 강조했던 무역적자 해소, 방위비 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향해 '머니머신(현금인출기)'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과 무역적자 해소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임 바이든 정부와 합의해 작년 11월 발효한바 있다. 하지만 국회 비준이 필요한 우리와 달리 미국에선 대통령 의지로 이를 뒤집는게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100억달러(약 14조원)를 내야 한다고 했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다수의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는데, 대표적으로 자동차와 농산물을 언급했다. 유럽연합(EU)을 저격한 말이지만 이는 우리 역시 해당하는 사안이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를 비롯해 철강, 석유·가스 등에 대한 관세 부과 의지도 밝힌 상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노골적 요구를 상쇄할 만한 힘과 의지가 우리에게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윤석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대표적인 '미국통'인 한덕수 국무총리도 탄핵소추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준비할 수 있는 '국가적 리더십'이 전무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와 물밑 협상에 나서야 하는 정부도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정부와 함께 역할을 해줘야 할 기업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일본 이시바 총리가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 나설 수 있는 것은 그가 일본을 대표하는 국가 정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일 뿐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연달아 탄핵시킨 민주당도 최 권한대행을 존중하지 않는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넘어 일개 비례대표 의원까지 요구를 받지 않으면 탄핵시키겠다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최 권한대행을 자신의 카운트파트로 여길지도 의문이다. 국민의힘 역시 그를 일개 장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지는 의심스러울 정도의 언행을 보이고 있다.

최 권한대행 역시 트럼프 대통령 취임 3주가 다 돼도록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외교라인의 손발이 다 묶인 상태라 힘에 겨워 보이는게 사실이다.

민주당 역시 현 정부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를 공략하기보단 윤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에 더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표가 최근 친중·반미 프레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친미, 친기업 행보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뿐이다.

국가정상급 원로들이 나서야 할 때 지만, 관심 밖의 일인 것 같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임기가 겹치면서 개인적 친분도 있는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와 외교,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이 허무해지는 현실이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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