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월 9일 6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고 김형진(기증 당시 41세·가족사진 위 왼쪽) 씨의 생전 가족 사진. 어린아이였던 둘째 아들 김도엽(24·가족사진 아래 왼쪽) 씨가 아버지 팔에 안겨 있다. 김도엽 씨 제공
■ 15년전 뇌사로 장기 기증
故 김형진 씨 아들 도엽 씨
“부친의 뜻 기리려 간호사 돼
중환자들 보며 아빠 떠올려
수술실·응급실서 근무 희망”
“장기 기증으로 6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아버지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숨은 영웅’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 2009년 1월 9일 뇌사로 세상을 떠나면서 6명에게 심장·신장·간·각막 등 장기 기증을 하고 떠난 고 김형진(기증 당시 41세) 씨의 아들 김도엽(24·사진) 씨는 아버지를 ‘숨은 영웅’으로 표현했다.
김 씨는 2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간호사가 됐다”며 “간호대학생으로 병원에 실습을 나갔을 때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환자들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살면서 아버지가 가장 생각났던 순간을 꼽으라면, 간호대 합격 통보를 받았던 날”이라며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간호사가 돼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간호대 재학 동안 방대한 분량의 공부와 병원 실습,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홀로 남은 어머니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장학금을 받는 등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것이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해 학생인 김 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어머니는 그런 김 씨에게 늘 “건강한 아들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씨는 지난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장기기증인 자녀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한 ‘D. F(도너 패밀리)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15년 전 9살이던 김 씨의 곁을 떠났지만, 몇몇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매일 바쁘게 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던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형제를 힘껏 안아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과로로 쓰러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막내인 김 씨는 “그 시절 따뜻했던 아버지의 품과 단란했던 집안 공기, 아버지에게 숨바꼭질 놀이를 해달라고 졸랐던 일들 모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아버지의 장기 기증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덕에 중학생 때부터 줄곧 간호사를 꿈꿨다”고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김 씨는 “대학병원 수술실이나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싶다”며 “가장 바쁘고 힘든 부서에서 일해야 간호사로서 제 역할을 잘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꿈꿔온 일을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