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오기 동요 속 ‘해돋는 나라’…그 가사 유쾌하지 않은 이유

2024-10-03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

〈제10부〉친일 논쟁, 그 떨쳐야 할 업장

① 우리 안의 친일, 정체는 무엇인가

해방 80년에 생각하는 조국

글머리에 고대 로마의 고사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코리올라누스(Coriolanus) 편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코리올라누스(Coriolanus)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로마 집정관인 코리올라누스는 선정을 베풀고 로마의 국위를 선양했으나 귀족들의 모함을 받아 반역 죄인이 되어 추방되었다. 그는 복수하고자 적국인 볼스키족의 족장 툴루스(Tulus)를 찾아가 병력을 요구했다. 툴루스가 기꺼이 허락하자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족을 이끌고 자신의 조국 로마의 정복에 오른다.

이때 한 노파가 코리올라누스 앞에 나타난다. 바라보니 자신의 노모였다. 그는 며느리와 손주들을 데리고 아들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네가 조국을 유린하려거든 이 어미의 시체를 밟고 넘어가라.

코리올라누스는 차마 조국을 유린하지 못하고 돌아가 볼스키족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셰익스피어는 이 대목을 읽고 너무 감동해 사극 『코리올라누스』를 썼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이 대목을 읽노라면 조국이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사실 알고 보면 조국은 속지주의다. 조국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국이라는 말 앞에 숙연해지며 솟구치는 열정을 느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를 응원한 전국의 시청자 가운데 오프-사이드(off-side)를 안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조국을 외쳤다. 5000년 역사에 그런 감동이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에는 조국에 대한 그런 열정의 대오를 비켜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 변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혹독한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한 인내의 한계, 지난 시절 부패한 왕정에 대한 환멸, 신문명의 신기함, 독립이 불가능하리라는 절망감, 그리고 반세기에 걸친 세뇌와 길들임 등으로 말미암아 일제 말엽이 되어서까지 독립의 열망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분강개함이야 누구엔들 없었을까?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