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세대 실손의료보험 도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금융당국이 연내 제도 설계를 마무리해 연내 시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올 하반기 들어서는 이렇다 할 진행 상황도 보이지 않고 있다.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 혼란을 겪는 가운데, 실손보험이 가진 포괄적 보장구조의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짚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연내 5세대 실손보험과 관련 제도 설계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기존 실손보험 상품의 구조적 적자 문제를 해소하려는 목적이다.
5세대 실손보험은 급여 의료비와 중증 질환 치료비 중심으로 적정 보상하는 상품으로 개선되는 것을 주요 취지로 한다. 기존 급여 의료비는 입원과 외래(통원)으로 분류해 자기부담률을 차등화하고, 비급여 의료비는 중증과 비중증으로 구분해 자기부담금과 출시 시기 등을 분류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최대 50%까지 보험료를 낮춰 국민 부담을 완화하고 보험료 공정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실손보험 개편 필요성은 지난해 8월 보험산업 신뢰와 혁신 도모를 골자로 하는 보험개혁회의에서 처음 언급됐다. 실제로 보험업계 전체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금융당국이 실손보험의 불필요한 비급여를 차단하고 필수의료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후 의료계, 소비자, 보건전문가, 학계 및 금융·보건당국 등이 참여하는 의료개혁 특별위원회가 이 논의를 이어받아 2차례 걸친 회의를 통해 실손보험 개편방안을 확정지었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연내 주요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분쟁조정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신규 실손보험 상품 출시와 기존 1·2세대 가입자 계약 재매입 시행방안 발표 등을 예고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들어 현재까지 5세대 실손보험과 관련한 뚜렷한 조치나 후속 절차를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활성화 관건이라고 볼 수 있는 1·2세대 가입자 계약 재매입 방안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개편 작업이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업권이 실손보험 개편을 염원하는 이유는 2010년대부터 개선되지 않는 적자 문제 때문이다. 자기부담금이 적은 점을 악용한 과잉 의료서비스 유발과 이로 인한 실손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인상돼 다수 국민의 부담 급증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1조6000억원으로 2010년대부터 매년 조 단위 적자를 이어 오고 있다.
보험업계는 개편 속도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은 이유로 정권 교체와 금융당국의 관련 업무 부처 개편 가능성을 지목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대통령 선거 이후 새 정부가 금융당국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모두 수장 교체기에 놓이자 실손보험 개편과 같은 중장기 과제의 추진 동력이 약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체제 정비를 마치는 대로 연초 예고했던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소비자 체감 폭이 큰 실손보험의 경우 현안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조직개편 발표가 한차례 지연되는 등 시간이 지속해서 흐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손보험에서 당초 내걸었던 목표인 연내 5세대 실손보험 출시 실현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또 업계에서는 추진 일정과는 별개로 정부가 제시한 5세대 실손보험 및 재매입 구조에 대해 다양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일정 기간이 지나도 자동으로 신규 약관으로 전환되지 않는 1·2세대 계약자들이 굳이 기존 보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동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난 6월 금융당국이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한 '실손보험 선택형 특약' 역시 1·2세대 가입자들의 전환 없는 보험료 인하를 골자로 하고 있어 5세대 실손보험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에서는 실손보험의 구조와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손보험의 보장범위가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부분'으로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보장하는 손해에서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통상적인 보험 상품의 구조와 다르다.
금융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예외 조항을 마련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신의료기술과 관련된 의료소송과 분쟁 민원이 있다. 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명확한 보험금 지급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급여 진료 후 실손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와 고객 간 충돌 사례가 늘고 있다. 무릎 줄기세포 주사나 전립선 결찰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포괄적 보장구조로 운영되고 있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며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은 담보를 별도 특약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향후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큰 담보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