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알쏭달쏭하거나 불필요한 ‘그’

2024-10-27

‘그’는 편리하다. 가까운 식탁에 있는 사과를 달라고 할 때 ‘그’가 있어서 “그 사과 좀 줘”라고 말할 수 있다. “식탁에 있는 사과 좀 줘”라고 하는 것보다 짧고 효율적이다. 앞에서 말한 대상을 가리킬 때도 ‘그’는 유용하다. “얼마 전 봐 둔 옷이 있어. 그 옷 사려고”라고 하면 된다. ‘그’는 또 다음처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알고 있는 대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아까 크게 웃던 그 사람이 대표야.” 이 문장에서 ‘그’는 ‘사람’을 더 선명하게 한다.

여기까지는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다음의 ‘그’는 대상이 확실하지 않다. ‘그’는 이럴 때와 어떤 일을 명확하게 밝히고 싶지 않을 때도 쓰인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대상이 확실치 않으니 ‘그’라고 해야 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보이는 ‘그’는 분명하게 대상을 밝히고 싶지 않았서였겠다. 이렇게 막연한 ‘그’는 말에서보다는 글에서 주로 보인다. 그런데 문학적 ‘막연함’은 상상력을 북돋우지만, 실용적이어야 하는 글에서는 ‘그’가 거추장스럽다.

“최종 점검하는 부서에서 그 이행 성과를 부풀렸다.”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장 구조가 다르다. 그 의미 또한 다르다.” ‘그 이행 성과’ ‘그 결과’ ‘그 의미’라고 표현했다. ‘그’가 필요했을까. 없는 게 간결하고 낫다. ‘그’를 넣어서 뒷말을 강조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습관처럼 ‘그’를 넣는 문장들이 꽤 있다. “지방자치에서 그 주인은 주민이다” 같은 문장에선 ‘그’가 더 불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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