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친구 셋만 데려오면, 월 천만 원 번다?"…피라미드 덫에 빠진 청년들의 비극

2024-10-25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4일 방송된 '인간사냥-피라미드의 덫'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류승룡, 박명훈, 카라 멤버 겸 배우 한승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청년들이 사라졌다

때는 1998년. 전국 곳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져. 20대 초중반의 젊은 남녀가 사라지기 시작한 거야. 명문대생부터 갓 제대한 사람,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까지. 전부 건강한 청년들이야. 어느 날부터 이 청년들이 가족들과 연락도 안되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아. 몇 개월째 생사도 몰라서 직접 찾아 나선 가족들도 있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지금부터 그들이 왜, 어디로 사라졌는지 얘기해 줄게.

1998년 봄, 오늘 군대를 제대한 석민(가명)이야. 설레는 마음으로 부대 정문을 나서자마자 제일 먼저 공중전화가 눈에 딱, 들어와. 석민이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제대했다고 신나게 안부를 전했어. 그렇게 친구들 몇 명에게 전화를 돌리는데, 그중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해.

"어머! 너 제대했구나? 잘됐다! 너 시간 많지? 일단 만나자 우리."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여사친이 대뜸 만나자고 했어.

"제가 98년 3월 10일에 제대했어요. 친구한테 전화를 했는데, 자기가 이제 서울에 있는 이벤트 회사를 다닌다고. 시간 내서 아르바이트를 좀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3일만 일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뭐 제대는 했으니까 얼마 정도 아르바이트는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 약속한 날에 짐을 싸서 올라갔죠 서울로. 양재역 4번 출구. 지금도 기억 나네요."

-이석민(가명), 당시 23세

석민이에겐 반가운 제안이었어. 오랜만에 친구도 보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니까.

같은 해,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현주(가명)야. 현주는 평범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날, 10년 넘게 알고 지낸 절친의 전화를 받게 돼.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나 제안을 하는데, 제가 그 당시에 머리가 되게 긴 편이었는데. 삼촌이 헤어 제품에 대한 박람회를 지방에서 하고 있어서, 3박 4일 정도 헤어 모델 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네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다고. 일당이 그 당시에 7만 원이었어요. 대학생이었던 저한테 굉장히 큰 돈이었었기 때문에, 가게 되었죠 처음에."

-김현주(가명), 당시 21세

현주도 그렇게 강남에서 친구를 만나게 돼.

비슷한 시기, 아르바이트를 하던 스물 세살의 창호(가명)도, 비슷한 전화를 받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다 똑같을 겁니다. '좋은 데 있으면 가야 되겠다'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이벤트 회사에서 뭐 관리하고 한다고, 출장 갈 수 있으니까 준비하고 와라 그랬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3일이었습니다 3일. 세면도구나 속옷, 양말이나 옷 몇 개 싸갔습니다."

-정창호(가명), 당시 23세

석민이랑 현주와 창호. 세 사람의 공통점 뭔지 알겠어? 세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 친한 친구의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약 3일의 시간을 빼서 서울 강남으로 간 거야. 친구 따라 강남에 온 이 세 사람은, 기가 막히게 똑같은 3일을 보내게 돼. 그리고 그 3일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놔. 과연 그 3일간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 비극의 시작

약속 장소에 도착한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장과 구두로 멋지게 차려 입은 거야. 너무 어른스러워진 친구가, 이렇게 말해.

"나 잠깐 어디 좀 들러야 되는데. 너 잠깐 시간 괜찮지?"

친구를 따라간 곳은, 강남 빌딩숲 사이 눈에 띄는 큰 건물 앞이야. 얼떨결에 따라 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문이 딱 열리는 순간에, 진짜 앳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었어요. 제가 딱 엘리베이터를 나오는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제 가방을 받아줘요. 그리고 제 주변으로 한 사람이 딱 붙어요. 그러면서 계속 말을 시키고 친한 척을 하고. 혹시 교회 부흥회 가 보셨어요? 막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 들리고. 노래만 안 나왔다 뿐이지 흥 돋구고. 여기저기서 막 동조하고. 이거를 쫙 여러 사람이 하는데 나만 거기서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면은 제정신 찾기가 쉽지가 않아요."

-이석민(가명), 당시 23세

"가장 먼저 들어온 거는 양복, 정장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랑, 그때 당시에 빨간 색깔 의자가 이렇게 줄을 지어서 있었어요. 그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여기가 뭐하는 데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현주(가명), 당시 21세

시끌벅적한 그 곳에서, 갑자기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돼. 굉장히 고급스러운 차림을 한 누군가가 저 멀리서 걸어 들어와. 그리고 이들이 하는 강연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몰려들어.

"제가 많이 버니까. 자 나이가 서른이 안 됐어요. 정말 세계에서 제일 좋다라는 벤츠를 탑니다."

"내가 소개한 사람들이 또 캐나다에 가서 캐나다 사람들한테 자랑을 하고, 부산에 가서 부산 사람들한테 자랑을 하고 뻗어나갈 수 있겠죠. 얼마나 메리트 있어요."

"저는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사실상 막막했어요.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지. 근데 이것을 알고 나니까 엄청나더라는 얘기예요. 한마디로 와닿는 거예요. 과연 내 주변에도 이런 것이 있었구나. 이번달 같은 경우는 한 4천만원 받았습니다."

이 회사, 뭐하는 회사인지 알겠어? 맞아. 다단계 판매업체야. 회사 이름은 'SMK(숭민코리아종합유통)'. 숭민코리아는 당시 잘나가는 종합유통회사였어. 연 매출 6천억. 전국 수백 개의 대리점과 약 20만 명의 판매원을 보유하고 있었어. 강남에 빌딩 하나를 통째로 쓰는 중견기업이야. 그 모든 걸 다단계 방식으로 이뤘어. 국내 다단계 최정상의 업체야. 아무것도 모르고 이 곳에 온 이 세 친구. 어떤 기분이었을까?

"친구한테 집에 가고 싶다고도 얘기를 했었고, 안 하겠다고도 얘기를 했었고, 듣고 싶지 않다고도 얘기를 했고. 저희 집이 그 당시에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았었던 거를 친구는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좋은 비즈니스를 같이 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게 어떻겠냐', '집안에 도움이 되고 이러는 게 어떻겠냐'. '한번 알아봐라'라고 얘기를 했어요."

-김현주(가명), 당시 21세

친구 옆엔 친구의 사촌오빠, 고모까지 가족들도 있어. 하나같이, 돌아가려는 현주를 만류했어. 그때 마침 강연자가 이렇게 말을 해.

"사람들은 다단계를 불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앞에 강남경찰서 보이시나요?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회사가 그 앞에서 버젓이 장사를 할 수 있을까요?"

현주는 일단, 강연을 들어보기로 해. 석민이랑 창호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까, 꽤 흥미로운 얘기야. 그렇게 어렵고 막막하기만 했던 돈 버는 방법이 아주 간단해. 그들이 하는 얘기는 이거야.

자, 너가 판매원이라 상상해봐. 첫 달에 너는 세 사람만 데려오면 돼. 친구, 가족, 아는 사람… 네 인생에 데려올 사람 세 명이 없겠어? 그렇게 네가 세 명을 데려오고, 둘째 달에는 그 세 사람이 각각 세 사람을 데려오는 거야. 그럼 네 밑으로 벌써 12명이야. 셋째 달에 다시 그 9명이 각 세 사람씩 데려오면? 3개월 만에 너로부터 뻗어나간 사람이 서른 아홉 명이 되는 거야.

게다가 데려온 사람들이 실적이 생기면, 일부가 너에게 수수료로 들어가. 이런 업체의 계산에 따르면, 3개월 뒤에는 월 1천만원이 넘게 되는 거야. 네가 3명만 데려오면, 그 후에 네가 일을 안 해도, 돈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거야.

그때는 98년이야. 1997년 IMF가 닥쳐 경제가 최악이었어. 대규모 실직 사태에 취업률 최저. 흔들리는 20대 청춘들에겐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어. 석민, 현주, 창호도 처음엔 얼떨결에 왔지만, 점점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 빠져들었어. 그리고 늦은 저녁이 돼서야, 이 강연이 끝났어. 근데 그날, 세 사람 모두 집에 돌아가지 못했어. 다같이 또 어디론가 이동하는 거야.

버스를 타고 밤 늦게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 도착해. 그리고 어두운 골목의 반지하로 들어가. 작은방 두개가 보이고, 한 10명 정도 되는 남녀가 그 좁은 방에 꽉 들어 찼어. 일명, 합숙소야. 24시간 함께 지내며, 빨리 성과를 낼 방법을 찾는 거야. 세 사람도, 일단 친구와 3일을 약속했으니까 딱 3일만 여기서 지내보기로 해.

▲ 자석요의 덫

그런데 합숙소 한 켠에, 사람 수만큼 뭔가 한가득 쌓여 있어. 바로 이거야.

이게 SMK의 주력 상품이야. 안에 자석이 들어있는 자석요야. 이걸 깔고 잠만 자도, 통증이 사라진대. 자석요에 이불, 베개까지 세트로 하면, 가격이 얼마 정도 했을 거 같아? 지금으로부터 25년전이야. 근데 세트로 하면 무려 520만원. 당시 대학등록금 2년 치에 맞먹는 금액이야.

근데 이 자석요가 과연 건강에 효과가 있을까? '꼬꼬무'가 자문을 구해봤어.

"자석이 건강에 좋은 효과를 준다고 정식적으로 명확하게 식약처에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즉 건강에 좋다는 효과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무리 강한 자석이라도 몸 전체 혈류에 영향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 자기장의 세기가 평균 1만 5천 가우스 정도 되는 MRI도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데, 자석요가 인체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명대학교 화학에너지공학과 강상욱 교수팀

그럼, 이 자석요세트가 얼마나 팔렸는지 알아? 1년에 거의 천억 원 가까이 팔렸어. 근데 일반 소비자가 이걸 520만원을 주고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 SMK 판매원이 되려면, 이 자석요 세트를 사서 일정한 실적을 채워야 하는 거야. 그래서 대부분, SMK 판매원들이 구입을 한 거야. 판매원들에게 할인을 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300~400만원 정도는 내야 살 수 있어. 그런데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그걸 일종의 창업 자금이라 생각했어. 3개월 뒤에 들어올 큰 돈에 비하면, 이건 적은 돈이라 생각한 거야.

그런데 석민, 현주, 창호는 전부 20대 초반이야. 그걸 살 돈이 없어. 그래서 둘째날부터는, 이 돈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알려줘. 지인에게 빌리거나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학자금 대출까지. 시작부터가 빚을 안고 시작하는 거야.

▲ 피라미드와 시나리오

그렇게 석민, 현주, 창호는 SMK의 판매원이 됐어. 이제부터 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과정을 누군가에게 똑같이 실행해야해. 그러면서 알게 돼. 자신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 곳에 오게 된 건지.

"친구 리스트를 다 씁니다. 고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군대… 모든 걸 다 적습니다. 다 적고 전화번호. 얘는 A등급 B등급 C등급 나눠서 '얘는 돈이 있다' '없다' 전화하면서 리스크를 체크를 합니다.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 관심 분야가 뭔지, 모아둔 게 있는지. 그걸 다 적어놓습니다."

-정창호(가명), 당시 23세

"이 사람이 무슨 '연극 배우를 하고 싶어' 그러면, '명성황후' 공연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들어가는데 너 같이 스태프로 한 번 안 뛸래? 며칠만? 이런 식으로. 다 전략대로 움직여요. 그 사람한테 전화를 하는 순간부터 다 전략이에요. 아, 그럼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온 거구나. 아주 철저한 시나리오대로… 그때 이제 느꼈던 거죠."

-이석민(가명), 당시 23세

설득할 상대의 경제상황, 성격, 인맥 등 정보를 최대한 파악하고, 어떤 시나리오로 이 사람을 데려올지. 나의 위 단계, 그 위 단계까지 모여 상의해. 왜냐하면, 피라미드를 견고하게 완성해야 하니까.

당시 강남 거리에는, 공중전화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대. 시나리오를 연습하거나 공략법을 나누는 거야.

판매원들은 철저히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였어. 마치, 다단계 사관학교처럼. 당시 다단계 판매원들이 들고 다니던 노트를 재현해 봤어. 여기에 어떤 내용들이 쓰여 있을까?

다단계 타겟으로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기준이야. 정에 이끌려 지인들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 사교성이 좋고 발이 넓은 사람. 사회 실정에 어둡고 취직이 절실한 젊은 사람... 이런 기준을 적용해 데려올 사람이 정해지면, 맞춤형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하는 거야.

* 통화요령

- 나는 요즘 좀 바쁘고 잘 풀리는데 너는 어떠냐는 식으로 살짝 자존심을 건드린다.

- 얘 요즘 뭐 하길래 저러지? 하는 호기심 유발.

- 통화는 되도록 빨리 끊는다.

* 만남요령

- 깔끔한 정장, 구두, 가방 필수

- 만남은 되도록 짧게

- 바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 태도에서 결정된다

- 통화할 때나 만날 때 외모, 말투, 표정 모든 걸 예전과 다르게.(이 일을 하면서 인생이 달라진 느낌)

-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하고 있어 보이게.

- 아쉬운 게 없는 사람처럼.

이렇게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짜서 상대를 만나고, 마지막 쐐기를 박아야 해. 밥 먹거나 차를 마시고 나서 계산할 때, 지갑에서 현금을 빼면서 실수로 바닥에 만원 짜리 수십 장을 흘리는 거야. 좀 억지스럽지? 이런 게 먹힐까 싶지? 그런데 이런 방법이 완전 잘 먹혔대.

▲ 우리나라 다단계의 시초

이런 다단계 시나리오는 하루 이틀에 정리된 게 아니야. 무려 10년이나 다져왔어. SMK는 이미 10년이나 된 회사였어. 그만큼 피라미드의 노하우가 쌓였겠지.

시간을 10년 더 앞으로 돌려서, 1988년 8월이야. 국내에 글로벌 기업이 하나 등장해. 이름은 '재팬라이프 코리아'. SMK의 자석요를 처음 개발한 기업이 바로, 일본의 재팬라이프라는 회사였어. 그런데 이 재팬라이프, 일본에서 악명이 높았어. 70년대 후반부터, 피라미드식 판매를 해왔는데, 피해자만 약 3만 여명으로, 일본에서도 크고 작은 여러 문제가 있었대. 심지어 정치자금상납 문제로 일본 국회에서도 물의를 빚었어. 그러다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고 문 닫을 위기까지 간 거야. 그때 그들이 찾은 돌파구가 바로, 한국 진출이었어.

사실 재팬라이프 뒤에는 일본 야쿠자 세력이 개입돼 있었어. 그 세력은 한국의 한 조폭 두목과 손을 잡았어. 그렇게 세워진 게 '재팬라이프 코리아'. 이게 바로 우리나라 다단계 판매의 시작이었어.

시작 후 얼마 안돼 회사는 이름부터 바꿔. '재팬라이프 코리아'에서 '산융산업'으로. 그걸 몰랐던 사람들은, 새로운 판매 방식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해. 당시에는 이런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나라가 다단계에 최적화된 나라였어. 정에 약하고 거절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다단계 판매 방식에 최적의 환경이었어. 회사는 시작부터 탄탄대로, 돈방석에 앉아. 그런데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폭력조직원을 대거 검거해. 산융산업의 한 축인 한국 조폭 두목도 범죄단체 조직 혐의 등으로 구속된 거야. 회사 입장에서는 큰 위기야. 근데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간 사람이 있어.

바로 이 사람, 이름은 이광남. 당시 40대였던 이광남이 신임 사장이 됐어.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우린 불법 피라미드가 아니라 합법적인 마케팅 사업이다"라며 다단계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거야. 당시엔 다단계 판매를 제지할 법이 없었어. 불법도 합법도 아닌 입법 미비의 영역이었던 거지. 위기에 처했던 이 회사는 다시 업계 최정상으로 자리잡았어. 대리점이 전국에 무려 6천 개까지 늘어났을 정도야. 초반 4년간 매출이 8000억 원. 지금으로 치면 무려 2조 원이 넘는대.

누구나 꿈꾸는 만큼 돈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사람, 나의 회사를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업게 원탑으로 이끌어낸 대표. 판매원들에게 이광남은 어떤 존재였을까?

"신이죠 그 사람은. 어디 뭐 콘도나 이런 걸 잡아놓고 그 행사를 해요. 그러면 이광남 씨가 행사 가운데 무대를 딱 걸어나오면, 다들 뭐 난리가 나요. 어떤 그 종교단체를 보는 느낌이에요. 그걸 만들었으니까 SMK라는 자체를 만들었으니까. 최고의 롤모델인 거죠."

-이석민(가명), 당시 23세

이광남과 그의 회사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들이 있어. 한 명은 바로 이 사람.

피해 규모만 4조원.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피해를 입히고 중국으로 도주한, 조희팔이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야.

회원 수만 35만 명, 전 제이유그룹 회장 주수도. 배우로 영화에도 출연하고 그랬어. 그가 사기로 입힌 피해가 2조원이 넘어.

조희팔과 주수도. 우리나라 다단계 사기 사건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두 사람이야. 그런데 이 두 사람, 공통점이 있어. 모두 SMK출신이야. 이광남 회장이 이끄는 SMK에서 다단계를 시작한 거야. 그리고 훗날 본인들만의 사기 방식을 만들어낸 거지. 그래서 이광남 회장은 '피라미드의 대부'라 불려.

▲ 큰 돈을 벌 수 있다? 피라미드의 현실

판매원들에게 언급한 기간은 3개월이야. 그 3개월 뒤에 얼마나 벌었을까? 현실은 상상과 달랐어. 한 달에 3명을 데려오는 게 쉽지가 않았어. 일단, 강연을 듣게 하려면 온갖 거짓말을 해야 해. 게다가 겨우 설득한 끝에 강연장에 데리고 오더라도, 다단계 업체인 걸 알고 화내며 돌아갔어. 결국 석민과 현주는 첫 달에 단 한 명의 판매원도 데려오지 못했어. 첫 단추부터 틀어진 거야.

소득은 없는데, 하루종일 시뮬레이션 하고, 전화 하고, 강연 듣고, 다시 합숙소로 가서 시나리오 수정하고.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없어. 돈을 벌기는커녕, 빌린 돈마저 바닥이 났어.

"진짜 배고팠습니다 돈이 없어갖고 라면만 먹고. 하루에 한 끼, 그 20대 청년들이 하루에 한 끼 먹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정창호(가명), 당시 23세

"저도 3개월은 굶었어요 점심을 안 먹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 포이동 앞에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어요. 거기에 김밥 한 줄에 그 당시에 1200원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거 하나를 사먹을 돈이 없었으니까."

-이석민(가명), 당시 23세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을 데려오는 게 더 어려워져. 다단계를 한다는 소문까지 퍼졌거든. 서너달이 지나서야 깨닫는 거야. 첫날 본 그 피라미드 모양을 완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가만히 있어도 (등급이) 올라간다고 하지만. 밑에서 안 때려주는데 어떻게 올라갑니까? 올라가기 위해서는 모자란 그 액수를 자기 돈을 갖다 박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천만원 이상 썼어요. 저는 굉장히 조금 쓴 거예요. 제 상위 등급 같은 경우에는 한 4천만원 이상 썼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당시 판매원들

"실질적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정창호(가명), 당시 23세

"이게 지속 가능하겠냐고요. 실질적으로 그 최상위 회사 밖에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구조예요."

-이석민(가명), 당시 23세

결국 청년들에게 남은 건 두 가지, 고가의 자석요와 빚 뿐이야.

"한 20개 이상 있었습니다 자석요만 저한테. 그냥 다 버렸죠. 돌리고 돌리고 하다 보니까 빚이 2천이 되고, 3천이 되고, 금방 4~5천이 되고. 나중에는 원금하고 하니까, 1억 한 5~8천이 되더라고요. 못 갚았습니다. 결국엔 파산했습니다. (합숙소에서) 저랑 같이 있던 분이 여자였는데, 사체를 쓰고. 업소에 팔려나간 걸 보고. 더 이상 이건 아니다…"

-정창호(가명), 당시 23세

"저한테 돈을 빌려줬던 그분의 친구가 인천에서 건달이셨대요. 강의실 앞으로 찾아 왔었어요. 돈을 갚으라고. 보아하니 대학생인데 돈은 없고 못 갚고 있고. 그러니까 '일본 술집에 팔아버리겠다' 이렇게 협박도 하고. 실제로 공동묘지에 끌려가서 묻힐 뻔한 적도 있고. '나 하나 없애고 나 하나 어디 보내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내가 죽는 거밖에 없겠구나…"

-김현주(가명), 당시 21세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큰 돈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어쨌든 본인의 의지로 시작한 일이기에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을 거야. 이제 그만 나와야겠다, 생각했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어. 당시 언론에선 피라미드를 이렇게 표현했어. '잔혹한 인간사냥'이라고. 열정과 불안함이 공존하고, 아직 경험은 부족한 세대. 그런 청년들이 덫에 걸리기 쉬운 대상이었어.

"27세 이 씨. 자석요 판매회사에 4000만원을 투자한 뒤 돈을 찾지 못한 것을 비관해 한강에 투신."

"21세 정 씨. 친구 소개로 다단계 가서 180만원을 모두 날리고 우울증세를 보이다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25세 정 씨. 다단계회사에서 결혼자금 2천만원을 투자했다가 사기당한 뒤 이를 비관해.."

"24세 홍 씨. 고향 선배의 권유로 자석요 판매업체에 280만원 투자 후 판매실적이 없어 우울증세를 보이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됨."

-당시 뉴스들 中

다단계를 시작했다가 생을 마감한 수많은 청년들. 도망가려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어.

"김 씨는 취직을 시켜준다는 친구 말에 속아서 피라미드식 판매 조직에 가입한 뒤에 이 조직의 실상을 깨닫고는 달아나려다 변을 당했습니다."

-당시 뉴스 中

"그때는 시민단체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모든 피해자들이 다 YMCA로 집중이 됐었어요. 기억나는 건 다단계 빠져나오려다가 뛰어내려서 죽은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자살한 사람도 많았고 그때는. 신문기사가 그때쯤 되면, '다단계' 치면 '자살'이 나올 정도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어요."

-정미현,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가장 많은 곳이 SMK였고, 특히 대학생 피해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앞으로 더 커질 거라는 것을 여러 곳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희경,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이렇게 다단계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였어. 회사나 합숙소에서도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어. 그런데 회사는 이렇게 말해.

"판매원들끼리 싸우고 사기치는 걸 회사가 어떡합니까?"

"우리는 합법적으로 마케팅 교육만 했습니다."

업체에서 발생한 일이기는 하지만, 업체의 책임은 없다는 거야.

▲ 피라미드의 생존 전략

사실 검찰에선 다단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이광남과 그의 회사를 주목하고 있었어.

"이른바 피라미드식 판매 방식으로 지난 1년 동안 1,500억 원 상당의 자석요를 팔아서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산융산업회사 간부 6명이 경찰에 적발돼 구속영장이 신청됐습니다."

산융산업의 조세포탈 혐의가 인정돼 벌금 50억 원을 선고 받았어. 그런데 회사는, 피라미드식 판매를 멈추지 않았어. 다단계 방식 자체를 처벌할 법이 없었던 거야.

그러다 1992년, 방문판매법이 시행돼. 다단계 판매를 규제할 법이 생긴거야. 그때 회사는, 또 이름을 바꿔. 산융산업에서, '숭민산업'으로. 숭민산업은 방문 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 발효된 이후에도 피라미드식 판매 조직을 계속 운영했어. 그리고 방문판매법을 근거로 새로운 수사가 착수됐어.

하지만 한동안 다단계 피해와 사장단 구속에 대한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됐어. 이광남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어. 타의추종을 불허하던 회사의 매출이 급락해. 그리고 방문판매법이 다시 한 번 개정돼. 다단계 업체들은 제조와 판매를 겸할 수 없게 된 거야. 지금까지 이 회사는, 저렴하게 만든 자석요를 비싼 값에 팔면서, 막대한 수익을 남겨왔어. 그런데 이제는, 제조만 하고 판매는 하지 못하는 거야. 그럼 타격이 너무 크겠지? 그러자 숭민산업은 판매사를 따로 분리해 세워. 그렇게 태어난 판매사가 '숭민코리아종합유통', 바로 SMK야.

재팬라이프 코리아에서, 산융산업, 거기서 또 숭민산업으로. 그 숭민그룹의 제조사가 숭민산업, 판매사가 SMK이야. 그리고 SMK는 본격적으로 회사 이미지 회복에 나섰어.

"저희 SMK가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건전 다단계판매 정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한국 다단계 자존심, 우리가 지킨다."

그러던 1997년. IMF로 나라 경제가 통째로 흔들리던 그때. 이광남 회장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어. 그때 전국민 금모으기 운동이 한창이었잖아? 이광남 회장이 전국의 SMK 회원들이 금 모으기를 해서, 1kg짜리 금괴 95개가 접수됐다고 밝히며 금덩어리를 들고 나타났어.

"전국 25만 우리 회원들이 나라 경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

-이광남, 당시 인터뷰

당시 시가로 14억 2,500만원 정도의 금이였어. SMK는 이걸 계기로 이미지 세탁을 제대로 했어. 나라가 어려울 때 번쩍거리는 금덩어리를 아흔 다섯 개나 들고 나타난 이광남 회장.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아.

스포츠 업계에 투자하기 시작한 거야. 여자축구단 창단, 역도단 창단, 권투프로모션, 실업육상연맹, 심지어 대한탁구협회장까지 맡게 돼. 그러면서 다단계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해. 이때 또 수만 명의 청년들이 SMK로 들어간 거야.

그래도 여전히 자석요는 비싸도 너무 비싸.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SMK는 '신용카드'도 된다고 해. 그 전까지 사람들은 주로 현금을 썼어. 근데 정부가 경기부양과 세금 징수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한 거야. 그래서 당시 대학가에도 카드사 부스가 경쟁하듯 세워졌어.

소득이나 신용조사도 없이 아무나 쉽게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렇게 신용카드를 사용한 현금대출, 3년 만에 7배나 늘어나. 다단계 업체의 매출도, 3년 만에 10배가 증가했어. 정부가 의도했던 신용카드 사용의 순기능도 있었지만, 반대로 신용불량자도 너무 많이 생겨났어.

그러면서 안타까운 소식들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해. 다단계로 인한 청춘들의 비극이 반복되는 거야.

"피라미드식 판매가 대학생들 사이에 파고들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카드깡이나 대출 통해서…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

"천여 만원의 빚을 지게 된 대학생이 빚독촉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당시 뉴스 보도 中

"그 약한 지점을 꿰뚫어 본 거죠 SMK는. 고용 불안과 카드가 점점 생기기 시작한 거, 특히 방학 때 등록금을 갖고 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고."

-정미현,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대학생들은 다단계 판매 때문에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무분별하게 발급받는 신용카드를 심지어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한다고 하면, 1인당 카드를 얼마나 많이 만들겠어요. 결국은 다시 학교로 못 돌아가는 문제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사실은 대학 사회가 파괴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김희경,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 다단계에 맞선 사람들

이렇게 안타까운 청춘들의 사건 사고가 반복되자, 다단계에 빠져드는 이들을 구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어. 바로, 또래 대학생들이 나섰어. 아무것도 모른채 빠져드는 친구, 선후배를 구하겠다는 거야. 학교마다 피라미드 대책반까지 생겨났어. 학보와 대자보에 다단계 이야기를 담고, 잘 보이게 곳곳에 붙였어.

"쓰린 상처는 함께 할 때 치유됩니다."

"언제라도 총학생회 노학연대 사업부를 찾아주십시오. 이제 작으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할 때입니다."

그 활동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진화했어.

"대학 동기가 '좋은 세미나가 있다'라고 얘기를 해서 갔는데, 거기가 다단계였던 거죠. 내 친구나 선배들이 이걸 하고 있는데 '이 말이 사실인가?'하는 궁금증이 생긴 거죠. 그거를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다단계' '피라미드' 뭐 이런 식으로 검색해 갖고, 모든 전 사이트에 있는 웹서치 검색을 혼자서 다 했을 거예요. 몇 개월동안."

-이택선, 당시 23세 대학생

택선 씨는 본격적으로 다단계를 파헤치기 시작했어. 찾아볼수록 다단계 업체에서 들은 얘기가 사실과 다른 게 너무 많아. 그래서 택선 씨는 글을 썼어. 하이텔 통신. 기억나? 거기에 '내가 경험한 다단계 이야기'를 올린 거지. 그랬더니 누군가 읽고 메시지가 오기 시작해.

"저도 갔는데. 그거 문제 있는 거 맞죠?"

"제 친구가 지금 거기 있는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동생을 빼올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주변에는 선뜻 꺼낼 수 없었던 다단계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기 시작한 거야. 비난이 두려워 말하지 못한 피해자, 그 피해자의 가족들도 온라인상이니까 서로 편하게 사정을 털어놨어. 이용자는 금세 늘어났어. 택선 씨를 포함한 몇몇 누리꾼들은 아예 단독 사이트를 개설하기로 해. 6명 정도가 모였고, 전부 학생들이야. 비용은 갹출. 그렇게 탄생한 사이트가 바로 '안티피라미드.org'. 그 첫 화면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대.

"더 이상의 아픔과 슬픔이 없는 그날까지"

- 안티피라미드 운동본부

사이트를 통해 다단계에서 빠져나온 사람도 생기고, 가족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사람도 생겨. 특히 높은 등급에 있는 다단계 판매원들의 양심 고백글은 영향력이 컸어. 이러한 움직임은 점점 큰 반향을 일으켜. 1년이 지난 시점에 사이트 누적 방문객이 200만명을 넘어섰어. 그러면서 오프라인 상담 요청까지 들어오기 시작해.

"그 당시에 서울 YMCA에다 도움을 요청을 했었고요. 공간을 저희한테 제공을 해주셔가지고 서울 YMCA의 그 공간 안에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전국에서 오프라인 상담을 하기 위해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까 점점 커지게 됐던 거 같아요."

-이택선, 당시 안티피라미드 운동본부 활동

"아침 9시부터 상담이 시작되는데, 8시 반에 초로의 부부가 들어오시더니 아들을 찾아달라는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 진짜 소를 팔아서 서울에 있는 아들한테 등록금을 마련해 줬어요. 그랬던 아들이 연락이 없어진 거예요. 방학 때부터. 전형적인 대학생 다단계에 들어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그때 다단계 대학생들이 제일 많았던 SMK에 연락을 했었어요. 전화해서 당장 이름, 생년월일 얘기하며 '찾아와라 오늘 오후까지. 반드시 찾아와라. 너희 분명히 있을 거다' 실제로 2시간 만인가 연락이 왔어요. 아들이 실제로 그 사업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SMK에서. 그래서 아들을 찾아준 경험이 있는데, 그게 저를 분노하게 했던 것 같아요. 피를 끓게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제 20대였으니까. 그 아들 찾았을 때의 그 표정들이 다 기억이 나요."

-정미현,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상담만 한 게 아니야. 안티피라미드 사람들은 틈만 나면 SMK로 향했대. 그 근처만 가면, 양복 입은 친구 옆에서 아무 것도 모른채 따라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야.

"여러분, 따라가지 마세요. 다단계입니다."

"거기 다단계입니다. 현혹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SMK사옥 앞에서 반대 시위도 벌였어. 이러니 SMK입장에선 얼마나 눈엣가시였겠어. 안티피라미드 사무실로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 전화가 오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정미현 간사가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찾아왔어. SMK 사람이었어. 그리고 정 간사에게 뭔가를 내밀었어.

"제가 한창 소송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맨날 야근하고 그랬는데, '너무 피곤해 하시는데 쉬엄쉬엄 하시라'고 하면서 책을 줬어요 저한테. 그 사이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냥 그 앞에서 뭐 열어 보기 그래가지고, 그냥 '뭐가 꼈나?' 하고 이렇게 딱 봤더니. 봉투에 돈이 대거 이렇게 들어있었어요. 엄청 난리치고 돌려주고 사과하게 하고. '이걸로 매수될 것 같냐' '너희들이 하는 행태가 다른 데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YMCA하고는 절대 통할 수 없는 짓이다' 사과하라고. 저희 다 모아놓고 사과하게 하고 그랬어요."

-정미현,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그 봉투엔 정미현 간사 월급의 세배가 넘는 돈이 들어 있었대. 당시 정미현 간사 역시 20대였어.

▲ 피라미드의 몰락

안티피라미드는 지독한 거대기업보다 더 지독하게 굴기로 해. 이른바 '새로고침' 작전. 다단계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관들의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는 거야. 당시엔 키보드의 새로고침(F5) 버튼을 동시 다발적으로 누르면, 서버가 다운되던 시절이야.

"저희는 그냥 운만 띄웠을 뿐인데, 엄청나게 많은 피해자들이 모여서 서버를 다운시켜서. 그쪽에서도 안티피라미드의 영향력을 알았죠. 얘네들이 그냥 있는 애들이 아니구나… 저희도 몰랐었어요. 그렇게까지 폭발적으로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지를. 이 정도까지 사람들이 분노하고 같이 공감하고 있다고는 생각 못했었던 기억이 나요."

-정미현, 당시 YMCA 시민중계실 간사

다단계 피해자들부터 가족, 친구들까지 온라인으로 다 모인 거야. 지금은 온라인 시위가 흔하지만 당시엔 꽤 파격적인 방식이었어. 이런 움직임으로, SMK에 대한 수사가 다시 시작됐어. 거기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이 있어.

이광남에게는 피해자들 또래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SMK의 최상위 등급으로 등록돼 있었던 거야. 가만히 있어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자리지. 자식들 뿐만이 아니야. 회사 간부의 친인척들까지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 몰려 있었어. 수많은 판매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이뿐만이 아니지.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와 서울시 공무원에게 수천만원의 뇌물을 준 사실도 드러나. 결국 이광남 회장은 구속 수감돼. 가입비 명목으로 판매원들에게 576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야. 혐의는 더 있어. 일확천금을 벌 거라고 한 허위광고, 제품 효능에 대한 허위 선전까지.

그럼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과대광고와 법인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 유죄가 인정됐어. 그렇다면, 다단계 사기 혐의는? 놀랍게도 무죄였어.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렇게 밝혔어.

"다단계 피해자들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고."

"일부 판매원들의 위법행위는 있었지만 회사 차원의 공모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이광남 회장은 이번에도 형을 살진 않았어.

SMK 방식은, 돈은 회사가 벌고, 책임은 판매원이 지게 설계됐어. 하지만 그 설계를 했다는 것만으로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야. 다단계 판매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니까.

법적 처벌은 아쉬웠지만, 결코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어. 많은 사람들이 SMK의 만행을 알게 됐으니. 매출은 겉잡을 수 없이 급락했고, 결국 2004년 최종 부도처리돼.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최대의 피라미드가 무너졌어. 이광남 회장은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다만 4년 뒤, 국세청이 공개한 신규 고액 체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어. 세금 463억 원 체납. 이후 이 회장은 2016년 세상을 떠났어.

이후, 다단계 피해는 좀 줄었을까? 업체 수는 줄었지만 다단계 피해자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 그래서 안티피라미드 운동본부는 10년간 끈질기게 활동을 이어갔어. 안티피라미드 멤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원래는 그만두고 난 다음에 다단계 쪽은 쳐다도 안 보려고 했어요. 내가 여기서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여기를 다시 들어와?... 다단계 쪽 관계해서 일한지가 26년 정도가 되다 보니까. 산 증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이택선, 당시 안티피라미드운동본부 활동

안티피라미드운동본부에서 가장 오랜 기간 활동했던 ID '조선팔도'의 이택선 씨는, 지금 서울시에서 다단계를 감독하는 업무를 하고 있어.

말을 잘하고 준비성이 철저했던 ID '오공' 김희경 씨는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어.

밤낮으로 다단계 피해자를 만났던 ID '보리' 정미현 씨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활동 중이야.

다단계 피해를 겪었다는 사람들은 고백을 하곤 해. 직접 당하기 전까진, 나도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걸 왜 못 그만둬?", "왜 몰랐어?" 그러면서, 자신은 절대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대. 그런데 악덕 업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치밀해. 누군가 덫에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어. 어쩌면 우리는, 운 좋게 아직 그 덫에 걸리지 않았을 뿐인지도 몰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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