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험지 유출 반복…내신 신뢰 붕괴 막아야

2025-08-12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시험지가 사전에 유출되는 사건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잇따른 유출 소동에 학부모를 중심으로 학교 내신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문제는 거듭 불거지는 유출 파열음에도 불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믿을만한 조치들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루된 몰지각한 범인들에 대한 징계 등 사후약방문에만 집중하고 그냥 지나가는 형식에 그치고 있다. 학생·학부모의 불안감·혼란을 가라앉힐 방안이 시급하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교사, 학부모, 심지어 학생이 공모해 시험 문제를 빼돌리는 사례가 반복되자 교육현장 안팎에서는 부실한 평가관리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시험지가 사전에 유출되는 사건은 대중의 기억을 뛰어넘을 정도로 속발하는 중이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총 26건의 시험지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울·부산·전남에서 각 4건씩 발생했고 대전 3건, 광주·경기·강원·경북 각 2건이었다. 충남·전북·경남에서는 각 1건씩 발생했다.

최근에는 일부 학원과 학부모가 교사와 연결돼 조직적으로 내신 정보를 공유한 사건도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매년 20명 안팎의 학생이 서울대에 진학하는 경기 분당의 한 명문 사립고도 지난해 10월 기간제 교사가 학원 강사에게 ‘수학Ⅱ’ 지필 평가 문항을 유출했다가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결코 각각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는 점은 특별히 우려할 만한 요소다. 유사한 시험지 유출과 평가 비리가 매년 크고 작게 반복되고 있지만, 그때마다 학교 내부 처리나 미온적 대응으로 넘어간 경우가 많다. 시험지 유출 사고에 가담한 교사들은 파면·해임되거나 감봉, 정직, 견책 등의 처분을 받고 학생들에게는 퇴학이나 등교 정지, 교내봉사 등의 징계가 결정된다. 교육 당국 차원의 감사나 징계가 이뤄진다 해도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은 부족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내신 관리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학교마다 평가 문제 출제·인쇄·보관·배포 등의 관리 방식에 차이가 있고, 일선 교사 개인의 책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게 문제의 핵심으로 분석된다.

허술한 시스템은 곧바로 학생과 학부모의 불신으로 직결된다. 특히 내신이 주요 전형 요소로 반영되는 대입에서 ‘공정한 경쟁이 아닌 정보력 싸움’이라는 냉소적 시선이 늘고 있다는 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반응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시험지 유출 사건은 대학입시에서 수시 모집이 주류가 되어 교내 시험의 비중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면서 거듭 빚어지는 범죄다. 시험지 유출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부모 자신들은 물론이고, 부정으로 운명을 결정짓게 된 아이들의 인생 가치관은 또 어찌 될지를 헤아릴 겨를조차 없을 만큼,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성적 지상주의가 완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을 앞서가야 하는 극도의 경쟁 풍토에 성적 지상주의가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상식과 윤리가 무참하게 뭉개지고 있다. 시험지 한 장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평가 시스템으로 한 인간의 인생행로가 결정되도록 국가사회 체계를 바꾸어야 비로소 멈춰질 부조리라면 참으로 서글픈 현실 아닌가 싶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교육 당국이 보안 강화 등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학생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교육 환경 조성에 더 많은 공력을 들여야 한다. 시험지를 훔치는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쁘다. 하지만 훔치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도록 만들지 못하는 학교와 교육 당국의 허술함도 방관해서는 안 될 심각한 병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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